▲ 오창영 기자
▲ 오창영 기자
상큼한 맛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레몬은 미국에선 그닥 좋은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보기에는 좋으나 시큼하고 맛없는 과일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불량품을 지칭할 때 종종 ‘레몬’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레몬’들이 많은 시장은 통상적으로 ‘레몬시장’으로 일컬어진다. 레몬시장은 한 가지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 간에 정보 불균형·정보 비대칭인 상황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에 레몬시장에선 우량품은 찾아보기 힘들고, 불량품만 가득하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레몬시장은 바로 중고차 매매시장이다. 판매자는 거래하려는 중고차가 레몬인지 아닌지 알고 있으나 구매자는 거래 전까지 중고차의 품질을 자세히 알기 어렵다.

판매자는 비싼 가격에 레몬을 팔고자 하지만 구매자는 구입하려는 중고차가 레몬일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싼 가격을 지불하려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려는 경제적 본능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구매자들은 정보 불균형·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실제론 제 가격보다 더 비싸게 주고 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판매자와 구매자 간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는 탓에 대다수 구매자는 우량품이 아닌 레몬을 고르는 역선택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구매자들의 불만이 날로 커지면서 중고차 매매시장의 ‘탈(脫)레몬시장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3년 간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완성차 업체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 여부에 대한 논의가 마침내 다시 시작됐다. 중소기업벤처부(중기부)가 이달 14일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에 대한 심의위원회를 개최하면서다.

심의위는 소상공인과 중소·중견기업·대기업 추천 위원 및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 추천 위원 등 총 15인으로 구성됐다. 여기서 중고차 매매 소득의 영세성, 보호 필요성, 소비자 후생에 대한 영향 등 다양한 측면을 검토하게 된다. 중기부는 심의위의 결정이 나오는 대로 행정 절차에 따라 조속히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고차 매매시장 개방 논의는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제자리 걸음을 걸어 왔다. 2013년 중소기업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된 중고차 매매업은 2019년 2월 지정 기간이 만료됐다.

당시 중고차 업계는 대기업 등의 진출을 막고자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다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를 살펴 본 동반위는 같은해 11월 부적합 의견을 냈다.

이에 최종 결정권은 중기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문제는 생계형 적합 업종 심의 기한인 2020년 5월 이후 1년 반을 훌쩍 넘기도록 중기부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음달이면 3년째 판단을 보류하게 된다.

기다리다 못한 완성차 업계는 지난달 중고차 매매시장 진출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현재 중고차 매매업은 생계형 적합 업종에서 제외돼 있는 만큼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를 직접 매매해도 법적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도의적인 책임을 의식해 완성차 업체들은 중고차 매매시장 진출을 자제해 왔다.

완성차 업계의 발표에 위기감을 느낀 한국·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자동차매매조합)는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에 사업 조정을 신청했다. 이어 중기중앙회는 중기부에 사업 조정을 신청했고, 이를 접수한 중기부는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 업종 최종 결정을 위한 심의위 개최 방침을 확정했다.

이번 심의위 개최로 업계 안팎에선 지금까지 논의해 온 바를 바탕으로 조속히 결론을 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심의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고, 최장 6개월까지 지속될 수 있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

이에 자동차10년타기시민운동연합(자동차시민연합)은 그간 중기부가 결정을 미뤄 소비자 피해가 커졌다며 이달 중 중고차 매매시장 개방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중고차 시장 개방과 관련해 법정 시한 내 결론을 내지 않아 3년 간 소비자 피해와 논란이 지속돼 왔다”며 “이미 시장 개방 결론이 오랜 기간 지연된 만큼 심의위는 심의 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적 고려에 휘둘리지 말고 시장의 주인인 소비자 후생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중기부가 중고차 시장 개방 문제를 결론 짓지 않고 지지부진한 태도로 일관할 경우 감사원 국민감사 청구서를 제출할 것이라는 뜻도 내비쳤다.

그는 “만약 이번 심의위에서 중고차 시장 개방 결론이 나지 않으면 정부 정책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는 물론 실망감도 상당할 것이다”며 “이달 내 완전히 종결되지 않을 시 중기부에 대한 감사원 국민감사 청구서를 즉시 제출할 것이다”고 말했다.

중기부의 노력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중기부는 심의 기한을 넘기면서까지 중고차 업계와 완성차 업계 간 상생안을 도출하기 위해 힘써 왔다.

중기부 관계자와의 통화에서도 고충을 느낄 수 있었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기부는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며 “단지 심의위를 준비·개최하고, 그 곳에서 결정된 사항을 고시하는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기부는 중고차 업계와 완성차 업계 간 갈등이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것에 매우 염려하고 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 해당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중기부에게 중고차 매매시장 완전 개방 허용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득해 보인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주무부처임에도 실질적 권한이 없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은 다소 무력해 보이기도 했다.

어렵게 심의위가 꾸려져 첫 회의를 마쳤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리 만무하다. 중고차 업계와 완성차 업계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심의위에서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 허용과 관련해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시간만 지체한다면 소비자의 피해와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만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양 업계가 상생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중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중기부의 역할이다.

중고차 매매시장이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레몬시장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중고차 시장 완전 개방 문제를 조속히 마무리 지어야 한다. 중기부는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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