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김찬주 기자 | ‘결국 뒤 돌아보는 그 순간 나는 어떤 눈빛을 지니게 될는지, 두 손으로 두 귀를 막고 어떻게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는지. 다만 몇 개의 그림자, 그리고 등 뒤의 세계’
 
▲ 지난 25일 새벽 서울역 3번 출입구 앞 번호도 없는 지하통로에서 일일 노숙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의 침낭 모습. 사진=김찬주 기자
▲ 지난 25일 새벽 서울역 3번 출입구 앞 번호도 없는 지하통로에서 일일 노숙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의 침낭 모습. 사진=김찬주 기자
◇ 서울역 한 복판에서 느낀 서러움
 
이장욱은 그의 시(詩) ‘절규’를 통해 뭉크의 ‘절규’에 표현된 사회의 불안과 공포가 사람이 생활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전하고 있다. 이미 불안과 두려움은 자신의 내면 의식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으며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다.
 
불안한 감정이 천근만근의 눈꺼풀을 지탱하고 있다. 도저히 잠이 들지 않는다. 눈을 직격하는 천장 LED 전등이 공중에 떠다니는 크고 작은 먼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왜 저기 누워있는 3명이 얼굴에 수건을 덮고 있었는지 이해가 된다. 마스크를 고쳐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 시간은 새벽 3시를 향했다.
 
순간 잠이 들었을까. 오른쪽 벽면에서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잠결에 천장에서 비가 새 벽을 타고 내려오는 줄 알았지만, 정신이 드니 얇은 물줄기가 물체에 부딪히는 소리 같다. 머리 방향으로 첫 번째 노숙인이 벽을 향해 소변을 보고 있다.
 
아뿔싸. 졸졸 물 흐르는 소리는 벽과 마주한 바닥 면 사이 틈으로 소변이 흘러 내려가던 소리다. 두 번째 위치의 노숙인 옆을 지나 내가 있는 세 번째까지 쉬지도 않고 왔다. 놀란 마음에 벌떡 그러나 최대한 막 잠에서 깬 사람처럼 비몽사몽 일어나 침낭을 말아 묶고 모든 소지품을 가방에 도로 넣어 지하통로를 나왔다.
 
▲ 지난 25일 새벽 한산한 서울역 구역사 앞 광장에 설치된 노숙인 텐트촌. 사진=김찬주 기자
▲ 지난 25일 새벽 한산한 서울역 구역사 앞 광장에 설치된 노숙인 텐트촌. 사진=김찬주 기자
오전 3시40분이다. 비가 조금씩 내린다. 부여잡고 있던 두려운 감정이 서러움으로 모습을 바꾸고 왈칵 올라온다. 좀처럼 이런 감정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서울역 광장 한 복판에 홀로 서 있다.
 
◇ “서러움과 두려움을 잊고자 술을 마신다”
 
오늘 잠은 다 잤다. 전날(24일) 저녁에 이야기를 나눴던 이 아무개(64)씨네 한 쌍을 찾아 나섰다. 연신 “너무 추워요 기사(기자)님. 팬티(텐트) 좀 주세요”라던 박순옥(71)씨가 추위에 떨던 모습이 뇌리에 박혀있어 가지고 온 침낭과 입고 있던 패딩 점퍼를 벗어 드리기 위해서다.
 
사방팔방 찾아 돌아다녔지만 찾기가 어렵다. 서울역 파출소로 갔다. 경찰관들에게 박씨를 아는지 묻자 잘 모른다고 했다. 한 경찰관은 노숙인 취재를 나온 기자는 여럿 봤어도 노숙하면서 취재한 기자는 처음 봤다고 했다. 별 소득 없이 고생하신다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무력하다. 노트북도 꺼지고 핸드폰 배터리도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영업시간 제한으로 카페도 어둡다. 시간은 새벽 4시20분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온 몸에서 처음 맡아본 냄새가 난다. 택시 기사가 “손님, 택시비는 있죠?” 물어본다. 처음 듣는 말이다. 잠시 뒤 ‘킁킁’ 거리더니 조수석 창문을 살짝 내린다. 냄새를 느꼈나보다.
 
만감이 교차한다. 우선 졸음이 몰려온다. 24일 새벽 6시에 일어나 25일 새벽 5시 현재까지 한숨도 못 잤다. 마음이 풀린다. 두렵고 불안했던 감정이 안도로 바뀐다. 박씨 할머니가 걱정된다. ‘비까지 내리는데 추위에 떨고 계시진 않을까.’ 지난 12일 한 노숙인이 수면 중 동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생각나 다시금 불안이 몰려온다.
 
‘출처 모르는 천사’의 밥차 장소 앞에서 술을 마시던 노숙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술을 마시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마신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불안’하고 ‘서러운 감정’을 잊고 잠이라도 편하게 자기 위해서라고 한다. 위에서 내리 꽂히는 타인의 시선, 노숙인들끼리 경계하는 모든 상황들이 자신을 두렵게 만든다고 했다. 이곳 서울역 노숙인들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 침낭에는 관리비가 없다
 
▲ 지난 24일 저녁에 만난 이 아무개(64)씨와 박순옥(71)씨가 침낭과 패딩을 받은 뒤 보관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찬주 기자
▲ 지난 24일 저녁에 만난 이 아무개(64)씨와 박순옥(71)씨가 침낭과 패딩을 받은 뒤 보관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찬주 기자
새벽 6시가 다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노트북을 충전해 펼쳐놓고 자리에 앉았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니 ‘집에 대한 관리비를 오늘(25일)까지 납부해 달라’고 한다. 가방에 들어있는 침낭이 다시 눈에 밟힌다. 침낭에는 관리비가 없다. 글을 다시 써내려 간다.
 
아침 7시 취재보고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침낭에서 침대로 바뀌었다. 마치 ‘특혜’를 누리는 듯 몸은 편한데 마음이 불편하다. 다시 침낭, 핫팩, 패딩 싸들고 서울역 박씨 할머니를 찾아 나서야겠다.
 
26일 오후 6시30분. 다시 서울역으로 갔다. 다행이 이틀 전 그 자리에 이씨네 한 쌍이 있었다. 1.8ℓ 페트병 소주에 굳어버린 닭날개 튀김, 떡을 먹고 있었다. 이씨에게 다가가니 “자네 왔나!”라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박씨 할머니께 침낭과 패딩, 핫팩, 먹거리 일체를 드렸다. 그녀는 여전히 “기사님”이라 부르며, “따뜻할 게요(따뜻하겠어요)”라고 말했다.
 
고작 침낭 따위. 그 어떤 물품이 있어도 그들에게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오늘도, 내일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익숙해지지 않을 ‘두려움’을 견뎌낼 것이다. 이 세상에 버려져도 될 사람은 없다. 우리 등 뒤에는 ‘그들’의 세계가 조용히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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