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역 구역사 앞 노숙인들의 텐트촌. 사진=김찬주 기자
▲ 서울역 구역사 앞 노숙인들의 텐트촌. 사진=김찬주 기자
“노숙 생활 한 번 맛 들이면 못 나와. 잠자리만 조금 불편하지 매일 종교나 봉사단체에서 밥 주고, 간식 주고, 조금이나마 돈도 줘.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다 제공 받잖아. ‘공짜’로 다 받으니까 사람들이 노숙에서 못 벗어나는 거야”
 
지난 24일 서울역 ‘노숙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노숙인에게 길거리 생활을 하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수년 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노숙을 ‘중독’이라 빗대면서 “지금은 노숙이 편하다”고 했다.
 
특이한 점은 서울역 노숙인들 가운데서 직업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노숙취재 과정에서 만나 자신을 택배 기사라고 소개한 A씨다. 보통의 등산복 차림의 그에게 소득이 있음에도 노숙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A씨는 “여기 있으면 돈 나갈 일이 없는데 굳이 방을 얻어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며 “집만 아니면 모든 게 다 주어지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역 노숙인 텐트촌 가운데 일부 노숙인들은 텐트 안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들은 공짜라는 타성에 젖어있었다.
 
기자가 이날부터 한나절동안 노숙취재를 하면서 겪은 서울역 노숙인들은 사실상 모두 안타까운 사람들이라고 규정할 순 없었다. 한 노숙인이 간이 의자에 앉았다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주변에 있던 다른 노숙인이 그 의자를 낚아 채가던 모습, 지하도 내 아무 곳에서나 소변을 갈기는 모습 등 도덕이나 생활 규범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무법지대이기도 했다.
 
앞서 만났던 이 아무개(64)씨는 “몇 년 전 잠시 박스를 주우러 나간 사이에 누가 내 텐트에서 물건을 훔쳐가 서울역 파출소에 신고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선생님도 그렇게 하세요’라는 답을 들었다”며 “그 이후로부터는 누가 훔쳐갈 것도 없게 최소한의 생필품만 소지한다. 이곳은 공짜에 익숙하고, 절도가 일상인 곳”이라고 일렀다.
 
20세기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매슬로가 제시한 ‘욕구 5단계 피라미드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에 다달으면 주로 기부를 하거나 봉사활동을 통해 내면의 풍족함을 얻고자 한다.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이전 네 단계들을 충분히 축적하고 어느 정도의 명예와 부를 성취한 사람들이 실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이 신체와 정신이 멀쩡한 노숙인들까지 길거리에 묶어버리는 역설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노숙 중독”이라고 주장한 한 노숙인의 말처럼 상당수 노숙인들은 충분히 길거리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받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물론 신체적, 정신적 문제로 필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예외다.
 
봉사와 도움의 손길은 언제나 아름답고 본 받아야 할 행동이지만, 어느 때에는 의도치 않게 ‘타성’에 빠지게 만들어 ‘족쇄’를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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