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겨울이 깊어져 추위가 일상이 되어가고 가끔씩 계절에 지칠 무렵, 명절을 기다리는 마음이 자그마한 불씨를 피어 올린다. 새로운 희망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하다.

누구나 알다시피 설은 한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아니 춘절이라고 구정 설을 기리는 명절 행사가 거대한 중국 대륙을 휘감는 것을 감안하면 동북아지역 최대의 명절이라고 해도 과언이랄 수 없다.

이런 설 명절이 코로나 19 역병의 여파로 많이 움추러들었다. 떠들썩하게 가족들이 모여 제사 음식을 준비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미풍양속이 축소되고 퇴색되었다.

그래도 시골엔 설이 가까워 오면 택배 차량이 눈에 많이 띤다. 시골에 오지 못하는 자녀들이, 친척들이, 친구들이 안부를 묻는 겸사해서 선물을 보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안동 간 고등어-가 가득 든 상자가 도착했다. 과연 이 많은 양의 냉동 간 고등어를 어떻게 나눠야 할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이웃집 주만 씨 댁이다.

지난번 고등어 택배가 왔을 때, 몇 토막 드렸더니 ‘정말 맛있더라구요. 시장 고등어 하곤 맛이 달라요.’라고 말해준 분이라 우선순위로 꼽게 된다. 시골에 살면서 좋은 점의 하나는 우리 부부에게 과하게 오는 선물을 나누어 줄 이웃들이 주변에 많다는 점이다.

한과는 집집마다 만들기 때문에 갖다 드려도 반가운 소리는 듣지 못한다. 돌김은 지난 노인회 모임 때, 집집마다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동네에 돌리는 품목에는 빠져야 하고.... 영찬 씨 댁은 닭고기를 먹을 만한 사람이 없으니까 빼야 하고.....

이렇게 신중히 생각해서 집집이 찾아 간다. 그럼 추운데 어서 들어오라며 고마워들 하시고 무엇이라도 답례할 것을 찾기에 바쁜 훈훈한 정경이 연출된다.

시장의 상인들은 명절이 대목이다. 요즘 매상이 많이 오르면서 살 맛 난다고 기뻐한다. 오미크론으로 변화해 확진자가 많이 나온 것은 걱정이지만 꼭 필요한 음식 재료들을 안 살 수는 없다. 떡국 준비하고 만두도 준비하고 차례 음식 장만하면서 며칠을 보낸다.
 
농가월령가에서 정월 초하루를 묘사한 것을 보면 옛 조상님들이 설을 보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새 의복 떨쳐입고 친척 인리(隣里) 서로 찾아 노소남녀 아동까지 삼삼오오 다닐 적에 와삭버석 울긋불긋 물색이 번화하다. 사내아이 연날리기 계집아이 널뛰기요, 윷놀이 내기하기 소년들 놀이로다. 사당에 세알(歲謁)하니 병탕(餠湯)에 주과로다.-

농가월령가는 정약용 선생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한글로 쓴 작품인데 병탕은 떡국을 말한다.
 
1849년 홍석모가 저술한 동국세시기에는 -멥쌀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넣고 떡메로 무수히 쳐서 길게 늘려 만든 가래떡을 얇게 엽전 두께만큼 썰어 장국에다 끓인 다음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어 조리한 것을 떡국이라 하는데 세찬에 빠져서는 안 될 음식이다- 라고 했다.
 
코로나-오미크론 시국이라 서로 음식은 나눠도 놀이 하러 모일 수는 없다. 사람들 마음부터도 흥을 나눌 기분이 아니다. 아주 가까운 식구끼리만 모여 서로 소식을 나누며 주변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살핀다.

이 어려운 역병의 시대에도 좋은 점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공평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공평하다니? 이제까지 무엇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병마는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자에게도, 귀족에게나 왕에게도, 총리나 장관에게도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동질성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 덕분에 인류는 동지의식으로 똘똘 뭉치게 되었다. 잘 사는 나라도 못 사는 나라도 같은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니까 말이다.
 
세월이 흘러가는 것 또한 막을 수가 없나보다. 명절이어서 떡국을 먹고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명절에 시댁에 가서 과중한 가사노동에 시달리고 명절 후 스트레스가 외상 스트레스 못지않다거나 하던 일들은 이제 점점 옛말이 되어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코로나가 그런 시국을 앞당겼다. 이제 명절 가까이 호텔에 예약을 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가 되어버렸다. 젊은 부부가 자녀들과 명절 호텔의 수영장을 메우는 것은 항다반사가 되어 버렸고 가끔씩 할아버지 세대와 함께 보이던 자녀 세대도 이제는 별로 보이지 않게 젊은 세대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제 노인들은 TV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어린 소년소녀들의 세배를 받으면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 TV안의 세계는 별나라의 세계와 같다. 그렇게도 보고 싶던 손자 손녀들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그 속에 있다.

‘개나리 학당’의 고운 학생들은 세대와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공부를 하고 숙제를 한다. 8세의 깜찍한 유하 학생은 자기 짝꿍인 53세 허 재 학생과 우정을 공유한다. 그 천진하고 당당한 모습에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 나이, 세대, 성별에 상관하지 않고 서로 우정을 공유한다는 테마는 한껏 긍정적이다. 이래서 새로운 미디어에 풀이 죽어 있던 TV의 세계는 새로운 컨텐츠의 발굴로 생명을 연장했을 뿐 아니라 선도적인 미디어로 리모델링에 성공했다.

코로나 시절의 명절인 지금, 사람들은 변화의 조짐을 여러 곳에서 느끼고 각성하며 숨죽여 변화를 응시하고 있다. 새 옷을 입고 온 동네 시끌벅적 놀이를 하는 옛 문화는 숨어 있고 이웃과 정을 나누는 문화만 애달피 남아 있지만 그 훈기 속에서 인내하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는 범의 기운이 온 천지에 내려 앉아 있는 것을 느낀다.

설날 아침, 서울 및 여러 지역에서 성스런 기운을 보여주는 서설(瑞雪)이 내렸다. 용트림하며 도약하려는 범의 기운이 느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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