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정부가 편성한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정치권의 증액 요구가 거세다. 당초 추경편성에 반대하던 정부는 여의도發 추경압박에 굴복, 지난달 21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14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추경 규모가 소상공인 피해지원에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더불어민주당은 34조 원, 국민의힘은 50조 원으로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재정 건전성보다 민생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홍남기 경제 부총리는 "정부안의 2~3배가 되는 규모는 국가신용에 악영향을 미치는 등 부작용이 커 여야 합의가 되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보통 추경 편성이 언급될 때면 여당이 증액을 요구하고 야당은 반대로 감액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여당이 앞장서고 야당이 야합하면서 여야 모두가 한결같이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은 코로나 재확산으로 피해가 큰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추경편성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취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추경의 법적 요건에 맞지 않는다. 추경이란 본 예산을 짤 때 미처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나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급하게 대응하기 위해 편성되는 비상수단이다. 그런데도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거론하며 연초부터 추경 타령이 나온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2년여 전 코로나가 국내에 유입될 당시부터 이미 예견됐던 사항이다.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문제가 결코 아니다. 빚까지 내가면서 사상 최대인 607조원으로 올해 팽창예산을 편성한 것도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 때문이다. 올해 예산이 집행되기도 전에 새해 벽두부터 추경을 하자는 것은 올해 예산이 말로만 ‘코로나 대응’이었고 실제로는 엉뚱한 곳에 예산이 배정됐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예산을 어떻게 편성했길래, 국회가 예산안 심의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5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추경을 편성했다. 이번 ‘2월 추경’까지 합하면 열 번째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3번이나 했다.선거 직전에 3년 연속 추경을 편성하는 기록도 세웠다. 특히 회계연도가 새로 시작되는 1월에 추경을 편성한 것은 6·25전쟁 중이던 1951년 이후 71년 만이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9차례 추경을 하면서 225조 7000억원의 적자 국채를 발행했다. 이번 10차 추경에서 11조3000억원이 추가되면 적자 국채 발행 규모가 237조원으로 늘어난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는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 1076조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50.5%까지 올라가고 국민 1인당 국가채무도 최초로 2000만원을 넘어선다. 이번에 추경 규모가 정부안보다 늘어나면 당연히 국가채무도 더 커져 재정건전성이 더욱 악화된다.
 
방만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재정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출이 수입보다 100조원 정도 많다. 부족한 돈은 국채로 메울 수밖에 없다. 국채 발행 물량이 시장에 과도하게 풀리면 채권 가격이 하락, 금리가 올라간다. 아니나 다를까 여야가 추경을 증액하기로 합의한 당일(8일) 국채시장이 요동을 쳤다. 이날 국채 금리는 2018년 5월 이후 45개월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고 국채 가치가 떨어지면 은행의 연쇄 부도 위험도 커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은행의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상당한 규모를 차지하는 국채의 가치가 하락하면 은행의 자산 건전성이 악화, 금융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와 민간 신용이 많고 빠르게 확대되는 나라일수록 은행 부도 위험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한다"고 강조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정부가 14조원의 추경안을 발표했을 때에도 국채 금리가 30bp(0.3%) 올랐다"면서 "(추경 규모를 증액해) 금리가 오른다면 국가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학자들도 포퓰리즘 공약 난무는 일본식 장기침체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릇 대통령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해야 한다. 본인 집권 시절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재정 악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다. 미국처럼 엄청난 재정적자를 기록하면서도 생존을 이어갈 수 있는 기축통화국도 아니다. 그런데도 선거철만 되면 야당마저 돈풀기를 주장하고 나서니 국가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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