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도 ‘짱깨’로 가십니까?

▲ 조용래 투데이코리아 편집국장
▲ 조용래 투데이코리아 편집국장
투데이코리아=조용래 편집국장 | 나라를 잃고 초라해진 백성들이 만주 벌판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이 지금의 중국 조선족 자치구다. 외세 침탈과 내전으로 피폐해진 대륙이 그들을 반겨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들은 많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가 되어야만 했다. 자신의 이름 뒤에 따라붙는 조선인이란 단어에 모호해진 정체성을 숨겨야 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베리아로 끌려간 사촌의 생사는 찾을 길이 없었다. 태산 같은 걱정 속에서도 “우린 이젠 살았나 보다”하며 안도했다. 그들은 흑룡강 줄기를 따라 마을을 이뤘다. 냉기 가득한 북방의 척박한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다. 메주를 띄워 토장(된장)을 만들었고 끼니마다 토장국을 끓였다. 함께 김치를 담가 먹으며 살아남았음을 확인하고 격려했다. 그들의 언어로 사랑을 나누고 결혼하고 낳아 기른 자식들이 지금의 조선족 중국인이다.
 
그들이 더듬이의 감각으로 지킨 우리말은 사실 의미를 정확히 알아듣기 어렵다. 간단한 의사소통만 겨우 가능한 우리말이지만, 그 정도를 못 하는 조선족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엔 없었다. 북한 사람의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 그들의 한국어에는 그들만의 투박한 억양이 있다. 영화 <범죄도시>에서 배우 윤계상이 잔인한 조폭 장첸을 연기했지만, 그것이 조선족의 이미지를 깡패로 굳힌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같은 서울 하늘 아래 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선뜻 내키지 않는 동네, 위험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범죄도시에 살고 있는 그들은 조국으로,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재중동포가 아닌 조선족으로 살아간다. 등 따시고 배부른 곳이 고향이라 했던가. 배는 부를지 몰라도 마음은 여전히 허전할 것이다.
 
한국에서보다 중국 토양에 뿌리를 박고 사는 조선족이 한복을 더 즐겨 입는 건 사실이다. 정작 나는 한복을 입어 본 기억이 희미하다. 광화문이나 경복궁역 주변엔 한복 입은 외국인이 흔하다. 모두가 아름답다. 예쁜 옷을 입는데 짱깨가 어딨고 깜둥이가 어디 있을까. 우리 옷이 예뻐서 입고 즐거워하면 모두가 좋은 게 아닐까. 아름다움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다. 그런데 하필 북경 동계 올림픽에서 사달이 났다. 조선족 중국인이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올림픽을 소개하는 방송에선 중국인이 김치를 먹는 모습이 나왔다. 우리는 중국이 우리 김치를 중국 문화로 조작하려 한다고 분노한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려는 것이 맛있는 김치인가 예쁜 한복인가. 그들이 세계인의 올림픽 축제에 아름다운 우리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만큼은 나는 분노하고 싶지 않다.
 
나의 첫 미국 정착지 로스엔젤리스(LA)가 그다지 낭만적인 도시로만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다. 내가 그곳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2년, LA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당시 나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방송을 통해 폐허로 변한 LA 다운타운을 봤다. 한인촌 상점이 불타고 약탈당하는 모습이 세계로 생중계 됐다. 한국에선 우리 동포를 걱정했다. 총을 들고 흑인 폭도와 맞선 재미교포를 한국 방송에선 영웅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흑인이 일으킨 폭동에 왜 한국인 이민자들이 표적으로 등장했는지 맥락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방송에서는 열등한 흑인들이 성실한 한국인의 성공을 질투했다는 분위기를 에둘러 보도했다. 의아해하던 나에게 한 흑인 친구가 물었다. “백인에게는 철저히 아부하는 한국인이지만 흑인은 얼마나 차별하고 무시하는지 아느냐”고. 은행 계좌조차 가지지 못한 못 배우고 가난한 흑인들의 주급 수표를 받아 소위 ‘깡’을 해 주며 폭리를 취하는 한국인 식료품상 얘기도 해 주었다. 극히 일부의 얘기였다고 생각했지만, 한인과 흑인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이유 중 하나였음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재미교포와 재중교포 모두 우리 동포다. 미국에서 한복 입고 김치 먹는 것이나 중국에서 한복 입고 김치 먹는 것이나 차이는 없다. 없어야 한다. 있다면 정치에 있다. 이념을 끌어들여 편을 나누고 세를 불리려는 비열하고 얄팍한 정치에 있다. 차별이 정치의 자산으로 작동하는 나라라면 국민은 저항해야 한다. 그런 정치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좌빨도 극우도 재벌도 가난한 사람도 김치 한 조각 없이는 라면 한 그릇 비우기도 쉽지 않다. 김치에는 죄가 없다. 할머니나 손녀나 외국인이나 고운 우리 한복을 입으면 모두 예쁘다. 적은 우리 내부에 있다. 줄 세우고 차별하며 나를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세우느라 누군가를 밑으로 끌어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뒤틀린 인성이 그렇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차별당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차별한다. 갑질도 당해 본 사람이 잘한다. 그렇게 우리가 혐오 사회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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