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 공동체정신 품격, 公正·過程의 중요성 일깨워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지난 20일, ‘지구촌의 스포츠 대제전’인 2022 제24회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전 17일간의 막을 내렸다.

전 세계 91개 나라에서 온 2900여 명의 선수가 총 109개의 금메달을 놓고 경쟁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올림픽이었다.

그럼에도 4년간 오로지 0.1초의 기록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투혼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연일 이어지는 각본 없는 인간승리 드라마에 우리나라의 대선(大選) 레이스도 우크라이나 사태도 파묻힐 정도였으니까.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면서 강렬하게 인상 지어진 것은 공정(公正)과 평등(平等), 그리고 목표지상주의가 아닌 과정(절차)의 정당성, 페어플레이 정신이다.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여러모로 ‘역대급’ 대회였다.

개막전부터 코로나19 및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여러가지 제약이 따랐고, 개최국 중국이 신장(新疆)자치구 이슬람 소수민족 위구르족에게 인권 탄압을 했다는 문제를 이유로 서방 국가 정치권 인사들이 개회식에 불참하는 '외교적 보이콧'도 이어지며 요란스럽게 시작됐다.

뿐만 아니라 대회 진행 중에도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들은 전 세계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중화(中華) 우월의식에서 나온 텃세와 문화공정(文化工程), 편파 판정, 러시아(ROC) 선수단의 금지약물 복용 논란을 들 수 있겠다.

개회식에서는 한국의 전통 의상인 한복(韓服)을 입은 조선족 여성이 오성홍기(五星紅旗)를 운반하는 중국 56개 소수민족 대표 중 한 명으로 등장해 많은 한국인들의 공분을 샀고, 쇼트트랙 종목에서는 오직 중국 선수들에게만 유리한 이해할 수 없는 판정들이 연달아 나오며 '중국 체전'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중국 애국주의를 드높이는 '중화 올림픽'으로 만들려는 중국의 의지가 논란을 촉발시킨 배경으로 지목됐다.

중국 선수단 출정식 구호는 "영수(領袖)에게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걸자. 일등을 다투고 패배는 인정하지 않는다. 총서기와 함께 미래로 가자"였다. 대국(大國)을 자부하는 중국이 주최국에 걸맞지 않은 근시안적인 행보로 소탐대실(小貪大失)했다면 억설(臆說)일까.

게다가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대표 선수 카밀라 발리예바(16)는 대회 전 제출한 소변 샘플에서 금지 약물이 검출돼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숱한 비판들이 발리예바에게 쏟아진 가운데 '피겨 여왕' 김연아도 자신의 SNS를 통해 "도핑 규정을 위반한 선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이 원칙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 모든 선수의 노력과 꿈은 공평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었다.

이런 와중에 결코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한 러시아는 어떤 해명이나 사과도 하지 않으며 16살의 '가녀린' 소녀 뒤에 숨기 바빴다.

어쨌든 주최국 중국이 ‘성공한 올림픽‘이라고 자화자찬을 쏟아낸 것과는 대조적으로 외신(外信)은 중국의 소수민족 인권 탄압 의혹, 일부 종목에서의 편파 판정,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스타 카밀라 발리예바의 금지약물 복용 논란 등을 거론하며 혹평(酷評)을 내린 것이 이번 대회의 성격을 웅변한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에서 "올림픽은 과거에도 논쟁으로 가득했으나, 이번은 최악이었다"라며 "여러 논쟁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스캔들(scandal) 올림픽으로 굳혔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의 소수민족 인권 탄압, 발리예바 금지약물 의혹 등에 대해 "올림픽이 계속 살아남으려면 IOC는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라며 "금지약물 검사 체계를 개혁하고, 여자 체조처럼 더 많은 종목이 최소 연령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AP통신도 "이번 올림픽은 스포츠보다는 스캔들로 기억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뭣보다 편파 판정 문제와 관련, 이번 대회 쇼트트랙 종목에서는 석연치 않은 판정이 연이어 나오며 많은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 판정의 가장 큰 수혜자는 개최국 중국이었다.

이번 대회 신설 종목인 2000m 혼성 계주에서 중국은 초대 챔피언이 됐다. 그러나 금메달을 확득하는 과정은 결코 매끄럽지 못했다. 준결승전에서 중국은 헝가리, 미국에 이어 결승선을 3위로 통과하며 탈락이 확실시됐다.

하지만 경기 후 비디오 판독 결과 심판진은 “중국이 주자를 바꾸는 과정에서 미국과 ROC(러시아)의 방해를 받았다”며 미국에게 실격 판정을 내리고 중국에 결승 티켓을 선사했다.

규정상 ROC는 중국의 터치를 방해했기 때문에 실격(失格) 사유가 충분했다. 그러나 중국 또한 터치가 이뤄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런쯔웨이는 ROC 선수의 접촉을 중국 선수가 터치한 것으로 착각해 터치 없이 레이스를 완주했다. 실격 사유가 분명함에도 중국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남자 1000m에서는 한국이 희생양이 됐다. 한국 대표 선수로 나선 황대헌과 이준서는 준결승전에서 각기 다른 조에 배치돼 1위,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레인 변경이 늦었다”는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실격됐다. 특히 황대헌의 경우, 인코스를 파고드는 과정에서 오히려 중국 리원룽이 뒤에서 잡아채는 장면이 포착됐음에도 심판진은 중국 선수들의 손을 들어줬다.

황대헌과 이준서의 허무한 탈락으로 한국 선수 없이 진행된 결승전에서도 편파 판정은 이어졌다. 런쯔웨이와 리웬룽, 우다징(이상 중국), 류샤오린, 류샤오앙(이상 헝가리)이 경합을 펼친 가운데 류샤오린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런쯔웨이가 류샤오린의 팔을 잡아당기며 먼저 들어가려 했지만 류샤오린은 이를 버텨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심판진은 잘못된 판정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이어진 비디오 판독에서 ’류샤오린이 런쯔웨이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실격됐고 금메달은 런쯔웨이에게 돌아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선수들의 대인배(大人輩) 다운 태도가 빛을 발한다.

쇼트트랙 경기 초반, 금메달을 도둑맞다시피 한 억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수들은 주눅들거나 좌절하지 않고 의연하게 평정심을 회복, 보란 듯이 쇼트트랙 세계 최강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남자 1500m 황대헌, 여자 1500m 최윤정의 동반 금빛 질주를 비롯해 ’원팀 코리아‘의 공동체 정신을 보여준 남자 5000m 계주, 여자 3000m 계주의 동반 은메달 등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여러 악조건에도 아랑곳않고 금메달 2개와 은메달 3개를 획득하며 쇼트트랙 최강국으로서의 자존심을 굳게 지켰다.

지난 8일 스피드스케이팅 1500m 동메달로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긴 김민석의 ‘경기 후’ 모습은 올림픽 정신을 새삼 일깨워준다.

김민석은 라이벌이자 세계 랭킹 2위인 중국의 닝중옌이 저조한 기록(7위)으로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고 있자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며 한참을 위로했다. ‘동료애’의 귀감(龜鑑)이었다. 이어 벤치에 있던 쓰레기를 정리하고 경기장을 떠났다. 올림픽에서 메달이 전부가 아니란 걸 몸소 보여줬다.

지난 9일 쇼트트랙 1500m 금메달을 딴 황대헌은 1000m 실격 판정과 관련해 “판정은 심판의 몫이다. 깨끗하게 했지만, (심판이 보기엔) 깨끗하지 못했으니 그런 판정을 받았을 거다”고 말했다.

특히 “(1500m에선) 아무도 내 몸에 손대지 못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밝혀 원망이나 비난 대신 실력으로 극복했다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결선까지 한 번도 1위로 골인하지 못했음에도 1000m 금메달을 딴 중국 런쯔웨이의 한국 대표팀 조롱 발언과 대비되는 순간이었다. 금메달리스트 다운 대인배(大人輩) 품격(品格)이 이렇게 달랐다.

14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황대헌이 전날 쇼트트랙 남자 500m 준결승 2조 경기를 마친 직후 자신 때문에 순위가 밀린 선수에게 사과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이 경기에서 황대헌은 페널티를 받아 실격됐다. 마지막 바퀴에서 추월을 시도하다가 캐나다의 스티븐 뒤부아와 부딪힌 것이다.

황대헌은 레이스 직후 뒤부아에게 손을 들어 사과했다. 뒤부아는 황대헌 쪽으로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황대헌의 사과를 받았고, 황대헌은 뒤부아의 등을 토닥였다. 두 선수는 이후 다시 한번 악수했다. 뒤부아는 어드밴스로 결승전에 진출했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유튜브 등에 “황대헌이 실수를 인정하고 경기 끝나자마자 사과하는 모습, 너무 멋있다”, “이것이 상대를 위한 존중이자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황대헌 선수는 마인드부터 이미 금메달이네요” 등의 칭찬 글을 남겼다.

지난 10일 루지팀 계주에서 대한민국 첫 주자로 나선 독일 출신 귀화선수 에일린 프리쉐(30)의 썰매가 커브 구간에서 트랙과 강하게 충돌해 뒤집혔다. 큰 부상 우려에도 팀 계주였기에,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였기에 그는 썰매를 다시 부여잡고 완주했다.

왼손이 찢어져 열한 바늘을 꿰매고도 다음날 빙판을 내달렸던 남자 쇼트트랙의 박장혁, 몸살감기에도 딸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며 완주를 포기하지 않았던 여자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최고령 국가대표 이채원(41), 한달 전 정강이뼈가 보이는 큰 부상에도 기적적으로 출전한 임남규(남자 루지)의 투혼(鬪魂)은 그 자체가 메달만큼이나 값졌다.

그늘이 없는 재치와 생기발랄함은 어떤가.

지난 16일 남자 5000m계주 결승에서 준우승을 한 대표팀의 ‘빨간머리’ 기수(旗手)인 노장 곽윤기(33) 선수는 이날 간이시상식에서 BTS(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안무 세리머니를 해 눈길을 끌었다.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금메달로 마무리하고 싶었을 곽윤기로선 아쉬움이 큰 결과이겠지만, 그는 고개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간이시상식에서 특유의 재치를 발휘해 BTS의 '다이너마이트' 춤을 췄다. 춤을 추는 곽윤기도, 이를 지켜보는 동료들도 모두 활짝 웃으며 시상식을 즐겼다.

일본 공식 올림픽 계정인 '고린'은 18일 "곽윤기가 은메달을 딴 뒤 시상대 위에서 BTS의 춤을 췄다"며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시상 사진을 올렸다.

일본 팬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은메달을 딴 뒤에도 진심으로 시상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이 올림픽을 개최하는 이유", "곽윤기의 마음가짐을 일본 선수들도 배웠으면"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마음 씀씀이도 으뜸이다. 여자대표팀은 3000m 계주 은메달(13일)을 획득했다. 계주 엔트리는 5명이지만 최민정(성남시청), 이유빈(연세대), 김아랑(고양시청), 서휘민(고려대)이 준결승과 결승에 출전했다. 동계올림픽 여자계주는 준결승, 결승만 치르며 한 번이라도 출전해야 메달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준결승에서 ‘5번째 선수’를 기용한다. 하지만 여자대표팀은 4명만 레이스에 참가했고 박지윤(한국체대)은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런데 4명이 박지윤을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메달포상금을 박지윤까지 5명이 똑같이 3000만 원씩 나누기로 했다.

맏언니인 김아랑은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좋았던 올림픽은 없었다”면서 “선수들이 힘든 상황을 이겨냈고 정말 ‘원팀’이 됐다”고 말했다.

박지윤은 선수촌에서 나머지 4명과 함께 땀을 흘렸고 출전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열렬하게 응원했다. 이유빈은 “박지윤 선수와 함께 합도 맞춰보고 훈련하면서 도움이 많이 됐고 그래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면서 “금메달을 같이 획득하기로 했는데, 함께 은메달을 목에 걸지 못해 너무 아쉽고 또 미안하다”고 말했다.

모름지기 스포츠의 감동은 공정한 과정과 빛나는 실력, 그리고 역경과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꿈을 향해 도전해나가는 '스토리텔링'에서 비롯된다.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과정으로 이루어낸 메달이 100개가 된다고 해도, 역사와 대중은 정정당당한 과정과 노력을 거쳐 이뤄낸 1개의 금메달을 더 값지게 인정하고 오랫동안 기억한다.

우리 선수들이 온갖 악재(惡材) 속에서도 묵묵히 올림픽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 그리고 국민들이 우리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변함없는 성원을 보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막판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제20대 대통령선거 레이스를 떠올려본다.

과연 선거판은 어떤가.

대한민국 올림픽 선수들이 펼친 페어플레이(fair play, 경기규칙에 따른 정정당당하고 공정한 경기 태도), 동료애, 공동체정신, 품격 등을 찾아볼 수 있는가.

여야 할 것 없이 포퓰리즘에 기반한 선심성 공약, 네거티브, 마타도어(Matador), 편가르기와 내로남불이 도를 넘은지 오래다. 품격의 정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민주당은 지난 주말 새벽 단독으로 국회 예결위를 열고 자영업자 320만명에게 300만원씩 지급하는 14조원 규모 정부 추경안을 기습 상정해 4분만에 통과시켰다. 지원액이 불충분하다며 반대하던 야당도 이에 질세라 21일 열린 국회 본회의 의결에 합류, 16조 9000억원 규모의 추경안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올해 예산(약 607조 7000억원)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사상 초유의 ‘2월 추경’을 통과시킨 것이다.

대선을 목전에 둔 여야가 지원대상 약 460만명을 겨냥한 ‘선거용 돈풀기’에 합심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해 "편파적인 행태가 도를 넘었다"며 날을 세웠다.

지난 선거 당시 내로남불은 물론 무능, 위선, 거짓말 단어까지도 정권을 연상시킨다며 사용을 불허한 선관위가 자당 후보를 음해하기 위한 주술, 신천지 등의 용어 사용은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고 노골적인 편들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고무줄 잣대’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얘기다.

“급기야 광주에선 윤 후보만 빼놓고 선거 벽보를 붙이는 황당무계한 불법 행위까지 등장했다”면서 베이징동계올림픽 상황에 빗대 "실력이 부족해서 반칙을 일삼는 선수 보는 것도 짜증나는데 심판까지 편파적이면 국민들이 보시기에 어떻겠냐"고 비꼬았다.

하기야 국민의힘도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대중 영합과 무개념 억지 헛발질 행태가 오십보백보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도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대한민국 올림픽 선수단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대선 후보들에게 기대하는 건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일까.

아무튼 국격(國格)을 드높인 올림픽 태극전사들에게서 ’3.9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대선(大選) 후보는 물론 유권자들 모두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냉정한 자아 성찰(省察)과 각성(覺醒)의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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