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하늘빛이 회색이다. 두터운 구름 이불을 덮고도 해는 묵묵히 자신의 궤적을 따라 중천으로 움직여가고 있다. 바람을 모두 빨아들였는지 바깥 경치는 숨을 죽인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런 날은 우울증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블루’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날씨가 이렇게 도와주지 않으니 어쩌나. 이런 날도 견뎌야 한다. 좋은 세월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좋은 날씨만 있는 것도 아니다. 또 바람이 없고 흐리기만 한 날씨니 곧 눈이나 비처럼 농사에 도움 되는 기상 현상이 찾아올 수도 있다. 하긴 이곳 영천 지역은 한 달 이상 비나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극도의 겨울 가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정말 비가 내리려나?
 
이런 날 체감 온도는 포근하다. 집에 있기보다는 산보를 하는 것이 나을 듯싶어 길을 나섰다. 근처에 고경 산단이 추진되고 있어 궁금증도 풀 겸 그 쪽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집 주위의 작은 산으로 난 길을 오르니 산단으로 조성되고 있는 부지가 한 눈에 환하게 들어온다. 43만평이라니, 실감을 못 했는데 넓은 길이 한 없이 뻗어 있는 것 하며, 골재를 가득 채운 트럭들이 여러 대 그 길을 무겁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띄고, 다른 쪽 산에는 잘라놓은 목재를 한 곳에 가지런히 모아놓기 위해 포클레인이 움직이는 것까지 굉장한 공사현장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길이 만들어지고 공장 건물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이주해 오는 정경까지 눈에 선하다. 내가 나이 들어가는 내리막 길 반대편에 희망을 가지고 공장을 짓는 젊은이들의 오르막길 올라가는 모습이 비쳐져 미소가 띄어진다. 이렇게 세월은 가는 것이겠지. 무거운 구름 이불 밑에서나 파란 하늘 한 복판에서나 해가 묵묵히 자신의 궤적을 따라가듯이 말이다.
 
작은 산 여러 개를 파헤쳐 놨으니 군데군데 산소자리로 보이는 곳도 여러 곳 눈에 띈다. 시댁 산소 두 기도 이장 권고를 받고 옮긴지 오래다. 옛날 산소 주위를 치장하느라 심었던 향나무들이며 비석조차도 그냥 방치되어 있다. 열여덟 그루의 향나무를 옮기는 비용이 너무 커서 포기했을 것이고 비석은 땅에 묻고 이장을 완료했어야 하는데 유족들이 확인하지 않았을 것 같다.

많은 산소가 옮겨졌을 것이다. 그 한 분 한 분의 삶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젊었을 때는 누구의 삶이든 찬란했을 것이다. 청춘은 고뇌조차도 아름답다. 실연의 눈물도 아름답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노인이 되고 그들이 삶을 어떻게 마감했을까 하는 부분이다.
 
며칠 전 미국에 사는 딸이 말리의 죽음을 알려왔다. 말리는 13살 된 리트리버종 멍멍이다. 한두 달 전부터 잘 먹지 않고 활동을 하지 않아 식구들 모두가 그 녀석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단다. 딸은 녀석한테 좀 더 맛있는 식사를 주려고 애썼고, 말리도 딸이 손바닥에 올려놓고 권하는 사료는 잘 먹었다고 했다. 죽기 전날 뉴욕엔 눈이 펑펑 내렸다. 다음날 아침, 달라진 흰 눈 세상에서 맘껏 뛰놀던 말리가 들어와 딸 옆에 누웠다고 했다. 눈에 젖은 말리의 손발을 닦아주고 자기는 책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용해진 것 같아 말리를 보았더니 그 영혼이 날아 간 것을 알 수 있었단다.

딸은 말리의 몸을 안아주고 식구들 모두 모여 애도한 다음 큰 타월에 싸서 미리 준비해 둔 마당 한구석 장지로 옮겼다고 했다. 딸에게는 키우던 펫의 죽음이 이번에 벌써 네 번째다. 아홉 개의 생명을 가졌다는 고양이 두 마리도, 몸집이 작아 귀여웠던 강아지 한 마리도 먼저 보냈다. 뒷마당 한 귀퉁이는 그 집 아이들에게 펫 공동묘지라고 불린다.

다행히 세 마리 모두 말리처럼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동물들은 겉모습만 봐서는 늙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행동이 느려지고 잘 안 움직이려 들고 먹는 양도 줄어 이제 어떤 변화가 있으리라는 것을 관찰하면 알 수 있지만, 얼핏 보아서는 늙어 보이질 않는다는 말이다. 그저 젊었을 때와 비슷한 모양새로 살다가 약해지면서 어느 날 숨이 끊어지는 것이다.
 
말리가 부럽단 생각이 들었다. 죽는 날까지 일상의 행동을 하고 주인한테 사랑 받다가 주인 발치에서 숨이 멎어 영혼이 하늘나라로 간다면 인간으로 볼 때도 확실히 행운이겠지? 그렇다면 나를 보살펴주고 사랑하는 주인은 누구지? 주위를 돌아봐도 주인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았다. 옛날엔 그 부분을 자손들이 해결해 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어쩌다가 고려장 문제도 나오긴 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는 얘기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80 나이를 먹은 유 튜버 한 분은 노년을 준비하는 단계를 말해준다. 1기는 내가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 2기는 타인에게 나를 의지하는 기간인데, 죽은 후에 매장할지 화장할지, 어디에 내가 묻힐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은 2기로 넘어가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울한 얘기 같지만 나 역시 어디에 어떤 방법으로 묻힐지는 정신이 뚜렷할 때에 결정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화장한 후에 어디엔가 뿌려 달라고 해서 자신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와 뉴스에서 숱하게 보아온 타인의 죽음과 나의 죽음은 무게감이 다르다. 자신의 죽음은 정면으로 바라보기 두렵다. 하지만 타인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나의 죽음도 존재한다. 나의 죽음은 내게 전 우주의 종말이라는 점을 빼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니 누구나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사실이 행운이다.

80살 유 튜버의 조언대로 나의 죽음에 대해 준비해 둘 것은 준비하고, 그저 내일이 인생의 종말인 것처럼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이 노년의 삶을 사는 해답이 아닐까 싶다.
 
 
투데이코리아는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