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오창영 기자 |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특히 해외 반도체 업체들이 발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한동안 공급보다 수요가 높은 상황이 지속돼 향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돼서다.
 
▲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관련 회의에서 반도체를 들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관련 회의에서 반도체를 들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車 반도체 품귀 장기화…신규 공장 짓지 않으면 향후 반도체 공급 한계”

최근 반도체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길어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IB) JP모건이 최근 개최한 기술·자동차 포럼에서 톰 콜필드 글로벌파운드리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차량용 반도체 부족 대란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며 “생산 설비를 늘리는 데 오랜 시간 걸리기 때문에 품귀 현상은 최소 2년 안에 풀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의 피터 베닝크 회장은 지난주 온라인으로 개최된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코리아’에서 “10~20년 뒤에도 반도체가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지난해 인터넷으로 연결된 기기는 400억대였지만 2030년 3500억대로 증가할 것이다”며 “반도체 수요가 10년 만에 10배 가까이 불어나는 셈이다”고 주장했다.

비단 업계만이 아니다. 각국 정부도 비슷하게 관측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상무부가 주요 반도체 업체들로부터 받은 공급망 정보 요청서(RFI)를 분석한 결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반도체 생산 설비는 90% 이상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를 공급받는 전방 산업계의 지난해 평균 재고량은 5일치에도 못 미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 40일치와 비교해 크게 급감한 수치다.

이에 만약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짓지 않는다면 앞으로 반도체 공급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미 상무부는 진단했다.
 
▲ 미국 뉴욕 나스닥 시장 화면에 표시된 인텔 로고.
▲ 미국 뉴욕 나스닥 시장 화면에 표시된 인텔 로고.

◇“업계 판도 바꾼다” 인텔, 車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진출 공식화

업계와 각국 정부로부터 이같은 분석이 쏟아져 나오면서 최근 해외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하거나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 인텔은 현지시간으로 17일 ‘인텔 인베스터 데이 2022’를 열고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어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를 전담하는 사내 조직도 출범키로 했다.

인텔 파운드리 사업 책임자인 랜디르 타쿠르 수석 부사장은 “고도화되는 차량용 반도체 솔루션에 대응하기 위해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에 사업에 진출키로 했다”며 “새롭게 출범한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조직에서 자동차 자율주행, 통신·센서, 전력 반도체 등 세 가지 분야에 집중할 것이다”고 말했다.

인텔은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차세대 반도체 칩 기술을 구현할 수 있도록 고도화한 파운드리 플랫폼을 준비한다는 구상이다. 또 미래차 산업에 발맞춰 고급 반도체 패키징, 첨단 설계 기술 등도 지원키로 했다.

자동차가 견뎌야 하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안정적이고 고도화한 성능을 뽐낼 수 있는 첨단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앞서 인텔은 지난해 3월 파운드리 사업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약 1여 년이 지난 지금 처음으로 구체적인 사업 분야를 지목했다. 기존에 강점을 갖고 있던 서버용 반도체, PC용 중앙처리장치(CPU) 등이 아닌 차량용 반도체를 사업 분야로 지목한 것은 향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높은 성장 가능성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인텔은 이미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키우기에 나선 상태다. 최근 이스라엘 반도체 업체 ‘타워 세미컨덕터’를 54억달러(약 6조4562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타워 세미컨덕터는 자동차, 소비재, 의료·산업용 장비 등 다양한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와 집적 회로를 생산하는 업체다.

이번 인수로 인텔은 차량용 통신(RF), 센서 등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며 다양한 고객 수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생산 능력도 확대하고 나섰다. 지난해 9월 팻 겔싱어 인텔 CEO는 독일 뮌헨에서 열린 모터쇼 ‘IAA 2021’ 기조 연설에서 “110조원을 투입해 유럽에 새 반도체 공장 2곳을 세울 계획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미국 애리조나주, 오하이오주 등에 각각 200억달러(약 23조9120억원)를 투자해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건립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1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펀드도 마련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인텔이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며 “장기적인 투자에 나선 인텔이 미국 정부의 재정·정책적 지원도 받게 된다면 앞으로 파운드리 업계의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고 진단했다.
 
▲ 대만 TSMC 본사.
▲ 대만 TSMC 본사.

◇세계 1위 TSMC, 생산 설비 확충에 역대 최대 규모 투자

인텔뿐만 아니다.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50%를 상회하는 대만 TSMC는 올해 반도체 생산 설비를 확충하는 데 440억달러(약 52조492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역대 최대 투자 규모다.

앞서 2020년엔 신규 반도체 공장 건설에 120억달러(약 14조3160억원)를 투입하기도 했다. 해당 투자로 현재 미 애리조나주에는 첨단 미세 공정 파운드리 공장이 건립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일본에도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TSMC는 최근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투자액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 파운드리 공장 건설 투자 규모를 기존 8000억엔(약 8조3000억원)보다 1800억엔(약 1조9000억원) 증가한 9800억엔(약 10조2000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TSMC는 일본 소니와 합작 자회사를 설립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착공에 들어간 신규 공장에서는 2024년 말부터 차량용 반도체를 양산할 예정이었다.

이번 투자 규모 확대로 일본 구마모토현 공장의 차량용 반도체 생산 능력 또한 20%가량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향후 TSMC가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봤다.

중국에서 가장 큰 파운드리 업체 SMIC도 올해 50억달러(약 5조9650억원)를 투자해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 이는 지난해 투자액 45억달러(약 5조3685억원)와 비교해 11.1% 증가한 규모다.

SMIC는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 등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한다는 입장이다. 신규 공장이 지어지면 SMIC의 연간 반도체 생산 능력은 현재 156만개 수준에서 180만개 수준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이렇듯 해외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향후 폭발적으로 증가할 차량용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앞다퉈 파운드리 사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는 것이 다가오는 미래차 시대에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로 대전환하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며 “기존 내연기관차에 탑재되는 차량용 반도체는 200~300개 정도에 불과하나 전기차에는 1000~2000개나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차세대 모빌리티로 꼽히는 자율주행차에는 한 대당 2~3만 개의 차량용 반도체가 요구된다”며 “미래차 시대에 발맞춰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반도체 업체 간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은 점점 심화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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