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직업 우습게 보는 정치인 반성해야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지만 우월감에 젖은 일부 정치인들에게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상투적인 수사로 들리는 듯하다. 지난 2월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말살하려는 침공에 폴란드 등 인접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물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거의 모든 국가들이 러시아 제재, 우크라이나 지원에 호응했다. 국내에서도 대한적십자사나 유엔기구, 민간단체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돕겠다는 기부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반면 서방 국가들의 제재로 러시아 루불화 가치가 폭락, 예금인출을 위해 줄을 서는 뱅크런 조짐까지 일었다.
 
대통령 선거 운동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빗대어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탓하는 발언이 잇달아 나왔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6개월 초보 정치인이 무리하게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공언해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고 말했다가 국내외의 반발을 자초했다. 이 발언이 영문으로 번역돼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커뮤너티 등을 통해 해외에 알려지자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는 해외반응이 나왔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지도력이 부족한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 미숙한 리더십으로 나토 가입을 공언하며 감당하지 못할 위기를 자초한 것”이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후보와 선두 경합을 벌이는 검사 출신 윤 후보는 외교 국제분야 경력이 일천하므로 국정을 맡기에 부족하다는 주장을 부각하기 위해 코미디언은 지도력이 떨어진다고 단정했다. 코미디언 직업인에 대한 폄훼가 아닐 수 없다.
 
이 후보는 ‘러시아 자극’ 발언이 국내외 비판에 직면하자 앞뒤 발언이 생략된 채 전달되다 보니 오해가 있었다면서 “표현력이 부족했다”고 서둘러 사과했다. 하지만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의 미숙한 리더십’으로 비하한 추 전 장관은 여전히 당당하고 여당 내 분위기도 그냥 넘어가자는 수준으로 감지된다. 민주당 집권 이후 주요 인사들의 성범죄 사건이나 망언이 나올 때마다 ‘적당히 덮고 가자’는 게 일관된 당내 흐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 전 장관 발언에는 코미디언을 비롯한 직업 연기인들을 낮춰보는 정치권의 편견이 작용한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은 대선 등 주요 선거 때마다 연예인들을 줄세워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이용했다. 선거 전후로 몇몇 인기 연예인에게 전국구 의원직이나 유관 단체장 감투 나눠주고.
 
추 전 장관의 ‘미숙한 리더십’ 주장은 편견
 
그런 자리마저 코미디언에게는 매우 인색했다. 코미디언을 시청자들 웃기는 일에만 몰두하는 단순하고 가벼운 직업인으로 경시한 것 같다. 판사 출신으로 국회의원과 당 대표를 역임한 추 전 장관의 언급은 은연중 이런 시각을 반영했다는 느낌이 든다. ‘코미디언 출신의 미숙한 리더십’ 부분은 상황을 종합 판단할 능력과 신중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검찰과 인권옹호 출입국관리 등 법무행정을 총괄하는 장관직을 역임한 분이 가져서는 안 될 직업적 편견이다.
 
해학과 재치, 농담, 행동으로 남을 웃게 만드는 코미디언은 쉽게 해낼 수 있는 단순 직업이 아니다. 코미디는 대사를 통한 스토리 전달뿐 아니라 대본의 흐름과 인물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표현해야 웃음을 유도하는 해학과 의미 전달이 가능한 전문 영역이다. 표정 연기와 유연한 몸놀림은 기본이고 순발력을 발휘할 재치까지 갖춰야 한다. 코미디언들은 대체로 다른 직종에 비해 재학 중 학업 성취도와 지능지수가 높은 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코미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기울이는 열정이 뛰어나다. 고달픈 서민의 삶을 웃음과 눈물로 위로해주고 때로는 기발한 순발력과 재치로 감탄을 자아낸다.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능력이다.
 
유태계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동부지역 출신으로 국립대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배우 겸 코미디언 등으로 활동해왔다. 2015년 TV 드라마 ‘국민의 일꾼’에서 부패한 정부에 항거하는 고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다 대통령에 당선되는 배역을 맡았다. 2019년 실제로 우크라이나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당선돼 국민의 신망을 받았으며 러시아 침공에 앞장서 항거하는 세계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추 전 장관이 걱정한 ‘미숙한 리더십’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입증한 인물이다.
 
유난히 판·검사 출신이 많은 국회의원의 눈에는 차지 않을 줄 모르나 국민이 보는 인기 코미디언은 연기인 중에서도 사회적 영향력이 뛰어난 전문 직업인으로 다가온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롤모델이기도 하다. 방송계 등에서 폭넓은 역할을 하고 있는 유재석 신동엽 등 인기 코미디언이 대통령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코미디언 우습게 여기는 편견을 정치인부터 버려야 정치가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다. 정치교체의 시작은 이런 마음가짐에 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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