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창영 기자.
▲ 오창영 기자.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내연기관차 대신 수소, 전기 등을 연료로 활용하는 친환경차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 날로 발전하는 과학 기술은 직접 운전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 시대를 앞당기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렇듯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대격변기를 걷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미래차 시대를 열기 위해 완성차 업계가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동차 산업은 예기치 못한 사태에 발목을 잡혔다. 전 세계를 휩쓴 차량용 반도체 부족 대란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12월 20일 기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한 전 세계 자동차 생산 차질 규모는 1027만대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국내 완성차 업체 5개사의 연간 생산 대수 346만대보다 약 세 배 많은 수치다.
 
올해도 자동차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조사업체 AFS(Auto Forecast Solutions)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품귀로 인한 올해 생산 차질 규모는 109만대로 예측된다. 이는 올해 1월 31일 기준 전망치 95만대보다 15%가량 증가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공장을 멈춰 세우거나 생산량을 줄이고 나섰다. 실제로 완성차 업체들의 가동 중단 스케쥴은 올 1월 31일 기준 23만대에서 지난달 37만대로 60.5%나 증가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완성차 업계가 연일 신음하고 있으나 이를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로 인해 자동차를 양산하기 어려워지면 완성차 업계의 차량용 반도체 수요마저 줄어들 공산이 크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이를 더 이상 목도할 수 없었던 주요 반도체 업체를 중심으로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인텔이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인텔은 최근 독일 중부 작센알한트주 마그데부르크에 반도체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1’에서 발표한 계획의 후속 조치다. 당시 인텔은 10년에 걸쳐 950억달러(약 115조1875억원)를 투자해 유럽 반도체 공장 두 곳을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업계는 이번에 건립되는 공장이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용도로 할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17일 열린 ‘인텔 인베스터 데이 2022’에서 인텔이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
 
인텔은 이미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키우기에 나선 상태다. 최근 이스라엘 반도체 업체 ‘타워 세미컨덕터’를 54억달러(약 6조4562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타워 세미컨덕터는 자동차, 소비재, 의료·산업용 장비 등 다양한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와 집적 회로를 생산하는 업체다.
 
또 미국 애리조나주, 오하이오주 등에 각각 200억달러(약 23조9120억원)를 투자해 신규 파운드리공장을 건립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1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펀드도 마련했다.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50%를 상회하는 대만 TSMC는 올해 반도체 생산 설비를 확충하는 데 440억달러(약 52조492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역대 최대 투자 규모다.
 
앞서 2020년엔 신규 반도체공장 건설에 120억달러(약 14조3160억원)를 투입하기도 했다. 해당 투자로 현재 미 애리조나주에는 TSMC의 첨단 미세 공정 파운드리공장이 건립되고 있다.
 
이들 업체에 뒤질세라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투자를 늘리는 모양새다.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매출 1위를 기록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분야 시설 투자에 43조6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매출 94조1600억원의 46.3%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0조4510억원)를 투자해 신규 반도체공장을 건설키로 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다. 경기도 평택캠퍼스의 3공장(P3) 공장 완공과 4공장(P4) 착공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여기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지가 적극 반영됐다. 2019년 4월 이 부회장은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다”며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생산 및 연구개발(R&D)에 133조원을 투자해 전 세계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를 넘어서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국내외 반도체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란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매우 열악한 탓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현황 및 강화 방안’에 따르면 2019년 차량용 반도체 매출액 기준 세계 점유율은 미국 31.4%, 일본 22.4%, 독일 17.4% 등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3%로 주요국에 비해 매우 저조했다.
 
국내 반도체 업체의 70% 이상이 가전, IT 기기용 첨단 공정 위주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원인으로 꼽을 수도 있으나 정부의 규제로 인해 반도체 생산 설비를 탄력적으로 구축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실제 수도권에서 반도체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공장을 증설할 때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준공 일정이 당초 계획보다 최대 몇 년이나 지체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대적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반도체공장 건설 등에 나설 수 있어야 하는데 규제에 막혀 경쟁 업체들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미국에 새 파운드리공장을 짓기로 한 데에는 정부의 규제 리스크 영향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의 대전환으로 차량 내 전기·전자 부품, 소프트웨어 수요가 확대되고 있고, 차량 연결 및 통신 네트워크 고도화,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시대가 도래하면서 앞으로 차량용 반도체의 부가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점쳐진다. 폭발적으로 증가할 차량용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선 국내 생태계를 조속히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에선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 및 안정화에 소극적이라는 느낌이 담뿍 묻어 난다.
 
‘뉘 집에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아느냐’는 속담이 있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선 어느 집이 죽을 끓이고, 또 밥을 끓이는지 알 수 없듯이, 정부는 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움직임이 어떠한지 심도 있게 살피고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제 정부의 차례다. 정부는 규제를 풀고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으로 화답해야 한다.
투데이코리아는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