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래 투데이코리아 편집국장
▲ 조용래 투데이코리아 편집국장
정나미 떨어진 인간, 인연을 끊어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가까이에도 있었고 멀리에도 있었다. 지금도 있다. 화해든 용서든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두 번 시도한 게 아닌데도 여전히 어렵다. 불구하고 확실한 건 하나다. 인연이란 게 완벽하게 끊어지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 복수의 욕망과 용서의 의미 가운데서 항상 헷갈린다.
 
“저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자고 예수님께선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을까요?”
존경하는 신부님께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만한 생각을 버려라. 용서는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切(끊을 절), 七과 刀가 모여서 만들어진 이 한자는 무언가를 끊거나 잘라서 완벽히 분리한다는 의미를 가졌다. 일곱 번 정도 칼로 내리쳐도 겨우 끊길까 말까 한 사람과 사람의 질기고도 모진 인연을 느끼게 하는 글자다. 왜 하필 일곱 번이라는 횟수로 정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 전쟁, 휴전한 지 70년이 됐다.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전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 개전 선언을 할 게 아니라면 종전 선언을, 하다못해 종전 선언 연습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최소한 일곱 번씩 열 번 정도는 말이다. 70년 전에 벌어진 전쟁의 비극을 극복하는데 앞으로도 70년이 필요하진 않을 거라면.
 
일곱 번쯤, 칠십 번쯤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혹은 조만간 진정한 종전 선언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끊어진 마음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강력한 무기를 만들고 미사일과 레이더를 수입해 오면 평화가 지켜질까.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다. 모순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한자 한 개의 의미를 더 얘기해주고 싶다.
 
恥(부끄러울 치), 귀(耳)에 들리는 소리가 마음(心)에 와닿은 상태를 의미하는 글자다. 이런 마음이 없으면 생각이 비뚤어진다. 그런 사람은 어떤 소리를 들어도 공감이 안 된다. 자기주장만 하기에 염치없단 소리를 듣기 딱 좋다. 미안함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창피한 마음을 가지는 법은 학교나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전쟁은 두렵다. 연결된 세계에선 다른 나라의 전쟁이 남의 일만도 아니다. 펜데믹은 고통스럽고 길다. 이런 세상이 올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했지만, 이것도 끝은 있다. 그동안 국민은 국가를 믿고 꾸역꾸역 열심히만 살 것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펜데믹 이후에 다가올지도 모를 경제 충격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아슬아슬하다. 새 대통령이 어떤 정치로 국민의 삶을 챙길 것인지 모두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국민만 보고, 국민 먼저 챙긴다던 대통령 당선인이 새 집터부터 찾아다녔다. 이사를 결심했다. 지난 19대 대통령의 기록과 역사성, 국가적 상징성은 물론 미래에 당선될 대통령의 집무실도 이번에 결정된다. 봄꽃이 지기 전까지 청와대를 꼭 돌려받겠다고 나선 국민 목소리도 없었다. 서울 시민만 세금을 낸 것도 아닌데, 집터 문제는 단군 할아버지나 태조한테 따지고 열심히 일부터 하면 안될까. 해도 해도 풍수 때문에 안 되면 그때 나라 전체가 이사 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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