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지난 정월달에 우리 부부의 금혼식이 있었다. 골든 애니버서리라고 해서 결혼한 지 50년을 기리는 기념식이다. 옛날에는 내가 그 나이까지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고 그런 까닭에 그 일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별로 하지 않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고 나는 조금도 늙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금혼식이 다가온 것이다. 하긴 거울을 볼 때 마다 목주름이 내 시선을 방해하곤 했다. 때문에 거울을 보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니 늙지 않았다고 말해 봤자 자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내가 관심이 없었다고 했지만 남편은 신경을 쓴 모양이다. 코로나가 있어서 성대한 모임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어서 도리어 다행이라며 결국 해운대의 조선 비치 호텔에 며칠 묵으며 금혼식을 기리기로 결론이 났다.

금혼식 당일 아침, 일어났을 때 손가락 몇 개가 구부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른손 장지와 약지 두 개였다. 따뜻한 물에 넣어 주물러 펴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나도 관절염이 시작되는 구나...

그 호텔이 좋은 점은 수영다운 수영을 할 만큼 근사한 수영장을 가지고 있는 거였다. 거기서 수영을 하면서 옛날 고교 시절 때, 학교 수영장에서 같이 수영을 하던 친구가 머리를 스쳤다. 그 친구와의 우정은 대학을 함께 가서 그녀가 미국 유학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었는데....

다짜고짜 전화를 했다. 나의 이름을 밝히고 만나겠느냐고 물어봤다. 사람이 황혼에 이르면 미루고 할 일이 없다. 즉시 하지 않으면 둘 중 하나는 죽어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용기 있어지는 것 아닐까 싶다.

다행히 그 친구도 좋아해줬다. 내가 서울 갈 때 만나기로 했고 날짜까지 확정했다. 코로나가 염려되니 넓은 자리가 있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친구 말, 가끔 이용하는데 그렇게 비싸지도 않단다.
 
우리의 금혼식은 좋았고 특히 친구와의 해후는 더 좋았다. 한 달이 지나 서울의 조선호텔 지하 식당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그 동안 손가락은 펴지다가 안 펴지다가를 반복했다. 일을 많이 한 다음날에는 으레 손가락이 뻣뻣하고 잘 펴지질 않았다. 하지만 집에서 잘 쉬고 놀면 괜찮은 날도 있었다.
 
몇 십 년 만에 만나는 친구지만 어제처럼 반가웠다. 서로의 주름살을 의식하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친구의 머리칼은 회색이었고 웨이브가 져 그런 대로 멋졌다.

“나, 이 머리...모다모다 샴푸로 감은 거야. 이제 염색은 하지 않는다. 이게 다 해결해 주네. 감기만 하면 염색되는 샴푸, 너도 알아?”
“물론이지, 내 머리는 완전 검은색으로 변했어. 21세기 과학에 경배를!”

우리는 친구의 제안으로 샴페인을 시켰다. 친구 왈, 그렇게 비싸지도 않단다.

“내 머리, 파마 안 하고 내가 롤 말아서 웨이브 만들고, 자르기도 내가 해.”
“정말이야? 그럼 미장원 갈 일이 없겠네. 근데 파마 안 하고 생머리에도 웨이브가 나오나?”

내 약한 머리에 파마를 안 해도 된다면? 정말 모다모다 샴푸 이상으로 기쁠 것이었다.

“병원에도 안 가니? 난 지금 손가락 관절염 때문에 병원에 가 볼까? 생각하고 있어.”
“손가락? 어디 봐! 안 펴진다고? 아! 그거 방아쇠 수지 증후군인데....”
“뭐라고? 무슨 이름이... 그래.”
“그거 일 안하고 얼마 지나면 낫는다. 손을 많이 써서 손의 힘줄이 늘어났기 때문이야. 관절염은 아냐.”

그러자 겨울 동안에 내가 우리 집 주위에 있는 100그루 정도의 무궁화 전정을
도맡아 했던 생각이 났다. 그랬구나. 그게 이유였네.

이 유식한 친구와 같이 있으니까 내가 늙은 것이 겁도 안 났다. 미국에서도 최고인 하버드 대학에서 유학한 친구지만 잘 난 척도 안 한다.
 
그 친구는 자기의 하버드 후배들이 만든 책을 내게 한 권 건네준다. 데이비드 싱클레어 라는 호주 출신 하버드 교수가 지은 책으로 우리말 제목은 –노화의 종말-이다.

“이거 읽어봐. 여기 -노화는 질병이며 따라서 없앨 수 있다—고 나온다. 이 책 선물로 줄게.”
“정말? 난 책 선물 너무 좋아한다구.”

하지만 너도 이 저자와 같은 생각인거야? 노화와 죽음을 숙명으로 보지 않고 질병으로 본다고? 노화를 방아쇠 수지 증후군 같은 질병의 하나로 본다고?

친구는 우리가 의학의 발달에 따른 혜택을 보고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녀도 나도 안과에서 노안 개선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 수술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좀 비쌌지만 (그녀 말대로 효과에 비해서 그렇게 비싸지도 않은..)우리 모두 눈으로만 보면 젊은이들이다. 양쪽 시력이 1.0이 나오기 때문에 눈을 사용하는 생활에 불편이 전혀 없다.

우린 헤어질 때 건강을 위해 하루 단식도 시도해 보자고 약속했다. 그러고 나서 한 달, 친구 말대로 방아쇠 수지 증후군은 많이 완화됐다. 방아쇠 당기는 소리처럼 딸각거리던 손가락 마디가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노화의 종말- 책에 의하면 우리가 과학에서 얻는 유익이 해를 지나면서 더욱 증가한다고 한다. 유전자 분석 지도가 있어 의사들이 우리를 치료할 때 그 기초 위에서 진단을 하기 때문에 오진도 거의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덧붙여 오래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사회 풍토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늙어갈수록 의료비용이 절감되며 죽음도 평온하게 이루어지므로 사회에 부담을 덜 준다. 젊은이들도 언젠가 노인이 되기에 노인의 건강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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