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한창 꽃이 피는 봄이 되면 도처에서 꿀벌들이 흥겹게 춤을 추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올봄은 딴 판이다. 벌들이 대거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올해 전국에서 약 80억~100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구 인구보다도 많은 수다. 한국에서 이처럼 대거 꿀벌이 사라진 것은 2010년 '꿀벌 흑사병'이라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이 유행, 토종벌의 90% 이상이 폐사한 이후 두 번째다.
 
농촌진흥청과 한국양봉협회, 지방자치단체가 지난 2월말까지 조사한 결과 전라남도, 경상남도, 제주도 등 남쪽 지역의 피해가 컸다. 지금은 실종사태가 수도권까지 번져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 농장에서는 벌통 500개 중 200여 개에만 벌이 들어있다고 한다.
 
올해 전국에서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진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농촌진흥청이 “이상 기후와 말벌에 인한 피해 증가, 일부 농가의 과도한 살충제 사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추측된다”고 밝혔을 뿐이다. 지난 겨울 한파가 극심했고, 일교차가 유난히 커 밖에 나간 일벌들이 체력 소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대거 얼어 죽었을 거라는 것이다. 또한 꿀벌에 기생하며 체액을 빨아먹는 작은 진드기인 응애의 번식을 막기 위해 양봉 농가들이 진드기 퇴치제 등을 과도하게 사용, 월동 전 꿀벌 발육에 악영향을 미쳤고 말벌류 중 하나인 등검은말벌이 지난해 늦은 10월까지 꿀벌에 피해를 입혔을 것으로 추정했다.
 
꿀벌이 사라지면 당연히 꿀 생산량이 줄어든다. 하지만 과일·채소류 생산은 물론 사료작물 등의 생장에도 지장을 초래한다. 꿀벌이 농작물의 수분을 담당하는 중요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재배하는 농작물의 3분의 1이 곤충의 꽃가루받이에 의해 열매를 맺는다. 그 중 80%가 꿀벌의 몫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꿀벌은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71종의 수분 작용을 돕는다. 특히 딸기 수박, 사과, 살구, 참외, 오이 등 과채류는 꽃가루받이 꿀벌 의존도가 무척 높다. 수박은 의존도가 90%를 넘는다. 그러니 이를 방치하면 농업 전반이 큰 타격을 입어 식량 위기와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벌이 사라지는 '꿀벌 군집 붕괴 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은 2006년 11월 미국에서 최초로 보고됐다. 보고가 있은 후 1년간 미국 27개 주에서 꿀벌이 사라졌다. 이로 인해 이 기간 중 국제 소맥(밀)값이 기록적으로 폭등, 역사적 고점을 형성했고 콩 옥수수 등 다른 농산물값도 유례없이 크게 올랐다.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식량난을 항의하는 시위와 폭동이 이어질 정도였다.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인간은 그로부터 4년 정도밖에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하버드 공중보건대 연구팀도 2015년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꿀벌이 사라질 경우 작물 생산량이 줄어 식량난과 영양 부족으로 한 해에 142만명 이상이 사망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유엔도 지난 2017년에 “오는 2035년이 되면 꿀벌이 멸종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벌이 사라지면 과수 농가들은 일일이 사람 손으로 꽃가루받이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벌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20만 원 내외였던 벌 1군(평균 4만~5만 마리)의 가격이 현재는 40만 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니 꿀벌 의존도가 높은 과일들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지난 겨울 딸기 소매가격이 평년보다 40% 넘게 올라 비싸게 팔린 것도 꿀벌 폐사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꿀벌이 점차 사라지면서 최근 6년간 국내 천연 꿀 생산량은 약 89%나 급감했다. 더 큰 문제는 벌의 수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각종 과채류 생산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국은 꿀벌 개체수 급감을 우리 농업의 위기라고 보고 최우선적으로 꿀벌 실종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대처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투데이코리아는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