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오창영 기자 | 차기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기대감과 시중은행의 금리 인하 등 대출 문턱 낮추기 움직임에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미 1900조원에 육박한 가계대출이 더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늘면서 우리 경제가 떠안게 될 부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 서울 소재 한 아파트 단지.
▲ 서울 소재 한 아파트 단지.

◇이달 가계대출 감소액, 지난달의 약 43% 수준 축소…부동산·대출 규제 완화 기대감 영향

28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 26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총 702조12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말 703조1937억원 대비 1조1811억원 줄어든 수치다.

올해 들어 가계대출 감소세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직전월 대비 가계대출 감소액은 △1월 1조3634억원 △2월 1조7522억원 △3월 2조7436억원 등이었다.

그러나 최근 감소세가 멈추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까지 점진적으로 덩치를 키워 온 가계대출 감소액이 이달 큰 폭으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이달 26일 기준 가계대출 감소액은 지난달 감소액의 약 43%에 불과했다.

이렇듯 가계대출 감소세가 둔화하는 배경에는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부동산 및 대출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는 점이 지목된다.

실제로 최근 부동산 매수 심리는 빠르게 살아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넷째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91.4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달 셋째주 91.0보다 0.4p 상승한 수치다.

매매수급지수는 부동산원의 회원 중개업소 설문과 인터넷 매물 건수 등을 분석해 수요와 공급 비중을 지수화한 수치다. 이 지수가 기준선인 100을 밑돌면 집을 사겠다는 수요자보다 팔겠다고 내놓은 집주인이 더 많다는 것을 뜻한다.

앞서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올 1월 17일 91.2를 기록하며 90선이 붕괴됐다. 이어 2월 28일엔 86.8까지 추락했다. 그러나 대선 직전인 3월 7일부터 반등하기 시작해 이달 넷째주까지 7주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거래도 활기를 띤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계약일 기준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는 1359건으로 1월 1087건, 2월 810건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간 위축됐던 매수 심리가 회복되고, 재건축 단지를 비롯해 서울 부동산 거래가 크게 늘면서 집값도 가파르게 치솟는 모양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12차의 전용 면적 155.52㎡(약 47.0평) 한 호실은 이달 15일 59억원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해 4월 16일 동일 면적 한 호실이 55억원에 팔린 것과 비교해 4억원이나 증가한 것이다.
 
▲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 압구정 현대아파트.
▲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 압구정 현대아파트.

영등포구 여의도동 화랑아파트의 전용 면적 104.5㎡(약 31.6평) 한 호실도 1년 전 최고가인 19억5000만원보다 2억4000만원 상승한 21억9000만원에 매매됐다.

양천구 목동신시가지9단지에선 지난달 29일 전용 면적 106.93㎡(약 32.3평) 한 호실이 직전 신고가 대비 5000만원 높은 21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집값 상승은 부동산 대출 수요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시중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낮추고 우대 금리를 제공하며, 가계대출 확대를 꾀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이달 5일부터 전세대출 상품의 금리를 최대 0.55%p, 주담대 금리를 최대 0.45%p 인하했다.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은 이달 8일부터 주담대 금리를 최대 0.3%p가량 내렸다.

또 하나은행은 최근 시중은행 중 처음으로 4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내놨다. 나머지 은행들도 주담대 만기를 40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담대 만기가 기존 35년에서 40년으로 늘어나면 돈을 빌린 고객이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은 줄어든다. 사실상 대출 부담이 완화되는 셈이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도 대출 규제 완화 기대감을 키우는 데 영향을 미쳤다. 대선 당시 윤 당선인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확대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현재 지역별로 40~60%로 차등 적용된 LTV를 지역과 상관없이 1주택 실수요자는 70%로,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는 80%까지 늘려 대출 한도를 높이는 것이 골자다.

이렇듯 부동산 대출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가계대출 수요가 살아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일각에선 현 추세가 지속될 시 가계대출 감소세가 끝나고, 조만간 증가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분석마저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의 부동산 및 대출 규제 완화 기대감에 더해 ‘대출 금리가 과도하게 높아졌다’는 여론을 의식한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낮추고 있다”며 “가계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대출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가계대출 증가세 전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고 말했다.
 
▲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대출 상담 창구.
▲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대출 상담 창구.

◇한은 기준금리 연거푸 인상 불구 가계대출 증가 불가피할 듯

문제는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반전하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한은)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대출은 지난해 말 이미 1862조원을 넘어섰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지금 가계대출은 더 늘어났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한은은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한은이 지난달 발표한 ‘금융 안정 상황(2022년 3월)’에 따르면 금융 시스템 상황을 보여주는 금융불안지수(FSI)는 올 2월 7.4로 주의 단계 임계치(8)에 근접했다. FSI는 크게 3단계로, 0~8은 안정 단계, 8 이상은 주의 단계, 22 이상은 위기 단계로 구분한다.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막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달 21일 취임한 이창용 한은 신임 총재는 “인기는 없더라도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 신호를 줘서 기대 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기조에 발맞춰 한은은 지난해 8월과 11월, 올해 1월에 이어 이달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0.25%p씩 기준금리를 인상해 왔다.

통상적으로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집값이 하락한다. 기준금리에 따라 대출 금리가 오르면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이 늘어나 주택을 사려는 수요가 줄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 및 대출 규제 완화 기대감이 시장에 만연한 가운데 추후 금리가 오르기 전에 더 빨리 집을 사려는 수요까지 몰리면서 집값은 날로 오르는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 안팎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당장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계대출은 부동산 시장과 직접 관련돼 있다”며 “부동산 및 대출 규제 완화로 부동산 시장 수요가 증가하면 집값은 껑충 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 대출이 늘면서 올 하반기로 갈수록 가계대출 잔액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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