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이 가사의 노래, 모두들 부르며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오월은 연초록 빛깔이 온 산하를 감싸고 하루하루 자라는 식물의 성장이 눈에 보이는 계절이다.

어린이날이 이 달에 있다는 것이야 말로 오월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는 반증이다. 어린이날이 없었으면 오월의 가치가 퇴색하고야 말았을 것 같으니 말이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가사로만 보면 해맑은 오월의 천지가 온통 어린이 차지인 듯 하지만 이 날이 제정되었을 때의 그 세상은 어린이들의 인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을 때였다.

일제 강점하의 고통스런 세상에서 어린이들은 당연히 제대로 대접받을 수가 없었다.

약자에 대한 인권 강화가 있기 전 까지 서구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어린이들은 사랑과 보호보다 굶주림과 가혹한 노동조건 하에서 착취당했다.

그 시절, 어린이의 인권에 눈 떠 어렵게 많은 일을 이루신 소파 방정환님을 비롯한 선각자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어린 생명이 태어나 가냘픈 피부 사이에서 눈을 뜨고 조물조물 작은 손을 펴고 엄마 젖을 찾아 빨아먹으며 생명을 이어나가는 광경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그 어린 생명에게는 어른들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린이날뿐이 아니다. 어버이날도 스승의 날도 오월에 있다. 자녀를 위하여 평생을 바친 어버이들께 감사하며 스승께도 감사하는 날이다.

카네이션이란 꽃이 특별히 감사의 꽃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오월이 되면 천지엔 카네이션뿐만 아니라 장미며 튤립이며 안개꽃이며 등꽃이 피어난다. 송화 가루가 툇마루를 노랗게 분칠하는 때도 오월이다.
 
5월 1일 노동절 날 TV를 보니 민주노총에서는 기념식을 하고 앞으로의 투쟁방향을 소상히 발표했다.

사실 노동자라고 하면 농촌의 농민들이 1등일 텐데 농민들도 연대를 만들어 투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연대를 만든다면 농촌에서는 투쟁보다는 협동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협동이 이루어 낼 목표는 네덜란드와 같은 농업강소국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5월의 노동절은 농촌의 경우 메이데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갖가지 꽃이 피어나고 어린 새 순이 산야에 자라는 5월은 농사의 시작이기도 하니 그 5월의 신록을 연상하도록 메이데이란 말을 그대로 썼으면 어떨까 해서다.

또 이 아름다운 5월의 첫 날을 기념해서 농사로 바쁘기 전에 마을마다 축제 한마당을 펼치면 어떨까 싶다. 그것은 민주노총의 –몸짓-행사를 보고 생각난 것이다.

절도 있게 군무를 추는 –몸짓-의 무용수만큼은 못하겠지만 한 자락 구성진 사물놀이라도 한번 놀아보면 어떨까? 마을에 생기를 주는 것은 물론 면사무소 복지회관에서 열심히 기량을 갈고 닦는 사물놀이패들에게 공연의 기회를 주는 것도 되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 산천에서는 마을단위의 축제가 사라졌다. 그들이 우리 것을 교묘하게 빼앗아 버린 대신 지금도 일본에 가면 마을 마다 곳곳에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날을 택해 고향을 방문하는 관광객도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농촌에서도 농업에 대한 문제만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방문객을 늘리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마을에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온다면 자연스레 그 고장의 특산품들도 현지에서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우리 농촌의 미래는 스마트 팜으로 성공하는 청년농과 자연의 품에서 힐링 하려는 도시민의 힐링 플레이스, 투 트랙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 같다. 그에 따라 농촌의 거주 인구는 늘어 날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떤 방향이든 간에 농촌은 도시가 줄 수 없는 매력 장소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기쁨을 느낄 때나 감사를 느낄 때, 우리보다 어려운 그 누구이거나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할 수 있다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곳이 되어갈 것이다.

그 대상은 우리 지구별일 수도 있고 함께 삶을 영위해 나가는 미물들일 수도 있으며 나무와 풀 들 식물들일 수도 있다. 꽃을 보고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그 꽃을 피워준 바람과 햇빛과 물의 고마움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5월! 5월은 아름다운 만큼 감사가 넘쳐나는 계절이다. 내가 이만큼 살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이렇게 키 크고 잘 생기게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키가 작은 나 같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키가 작으므로 키 큰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주었으니 나의 희생이 보답을 받으리라... 라고)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외모, 두뇌, 성격, 체질이 제 마음에 쏙 들게 태어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서로 비교를 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표현이 부정적으로 쓰이는 현실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그런 점을 순수한 다양성이라고 부르겠다.

모든 사람이 공장에서 빵 찍어내듯 똑 같이 생겼다면 그게 도리어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생긴 것부터가 모두 다른 것이 현실이고 그 현실이 생래적인 것인데 그 점을 억울하게 생각하면 답이 없다. 형제간에도 외모가 차이난다. 하지만 바라건대 그 차이를 우열로 생각하지 말고 매력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5월의 자연은 아름답다. 키가 작거나 크거나 불평하지 않고 갖가지 사물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면서 조화롭게 피어나는 5월이다. 아주 드물게 ‘5월의 서리, 냉해’가 있긴 하지만 그건 넘어가기로 하자.

그리고 그런 5월이 농촌에서는 더욱 빛을 발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언제나 함께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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