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비가 올 듯, 올 듯 하며 오지 않은지 한 달이 넘었다. 봄에 심은 어린 묘목이 뿌리를 내리지 못할까 걱정되었다. 며칠마다 어스름 저녁이 되면 동림원에 가서 어린놈들에게만 따로 물을 주었다. 그렇게 신경을 썼는데도 이상했다. 잎이 점점 시들어간다.

아! 정말 목 타는 가뭄이야. 저 깊은 땅 속까지 빗물이 스몄으면 좋겠다. 그러면 모두 생생하게 살아날 텐데...

우리 과일나무를 가끔씩 돌봐주는 조경회사 사장님이 어느 날 들러서 나무를 봐 주시겠단다. 그렇지 않아도 물 줄 때가 되었으니 부탁 좀 해야지. 헌데 호스로 물을 주시던 사장님, ‘오! 두더지 굴이에요. 물이 콸콸 한없이 들어가요.’하는 것이 아닌가?

두더지? 처음 듣는 말이었다. 두더지란 말은 국어사전에만 있는 말로 알았다. 아니, 그런 동물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 놈이 우리 동림원 밭에 살고 있다고라? 그리고 그 두더지가 우리 동림원과 무슨 상관이지?

사장님 왈, 우리 어린 묘목이 시들어가는 것은 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두더지가 땅을 파헤치면서 뿌리를 건드려서 땅에 굳건히 뿌리박지 못하고 마르고 시든다는 것이다. 기가 막혀! 이런 일이 있다니?

그 날 집으로 돌아가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많은 농부들이 두더지 때문에 애 쓰고 힘들어하고 퇴치하려고 온갖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더지 덫도 여러 종류였고 두더지 길에 묻는 약도 여러 종류였다.

유 튜브에서 본 글만도 수십 개였다. 아니 내가 못 본 글까지 합한다면 수백 개가 넘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자리에 들어서까지 뇌리에 꽉 차 있던 생각은 이랬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채로 존재하는 사실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실상 바닷가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 한 알 만큼도 되지 못 할 것이다. 

시골에 내려오기까지 나무를 심는 사람은 으레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심겨진 나무는 저절로 자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무에 관해서만도 알아야 할 사실이 수없이 많다. 그리고 계속 알아가는 중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알아야 할 일들이 많을까?

월요일에 베트남 여행을 떠나야 해서 두더지 문제는 사장님한테 맡겼다. 아니 여기 있더라도 내가 직접 무엇을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부탁했을 테지만 말이다.

베트남은 코비드 19가 시작되기 직전에도 여행했던 곳이다. 여러 분야로 우리 부부와 연이 많은 곳이어서 열 번 이상 여행한 듯하다. 날씨가 온화하고 거리가 가깝고 내가 좋아하는 채소 음식이 흔해 마음 편하게 여행갈 수 있는 외국 1번이다.

하노이에 도착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내 전체가 비에 폭 젖어 있었다. 얼마나 부러운지 몰랐다. ‘비가 내리네. 정말로 비가...’ 

우리 영천은 지금 얼마나 말라 있는데.... 정말 비가 고팠다. 지난겨울에 영천엔 눈 한 송이 날리지 않았다. 서울엔 쬐끔 왔다고 했다. 그래서 뉴욕에서 보내준 친구의 사진에서 눈사람 만들고 노는 사진들과 눈이 펄펄 내리는 동영상들을 저장해 놓았다. 그땐 눈이 고팠었다.

다음날 아침엔 비가 심하게 왔다. 예약했던 골프 플레이는 취소했다. 그래도 비가 좋았다. 운전기사는 비가 많이 오면 하노이에 강물이 넘쳐흐른다면서 걱정했다. 운동 대신 전쟁 기념관에 갔다. 예전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게 되면 영어로 안내판을 읽고 지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초대한 분들이 영어도 잘하고 한국어도 잘하는 베트남 여자 통역을 내게 붙여 주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그냥 졸졸 나를 쫓아다니는 그녀한테 일거리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을 붙였다. 영어로, 한국어로 번갈아 가며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베트남 역사부터....

아차!
이 일이 내게 새로운 영감을 주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 젊은 여자 통역의 이름은 ‘하나’였다. 물론 베트남 이름은 아니다. 쉬운 발음으로 누구나 그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하려고 붙인 이름에 불과하지만... 그녀는 내게 천년 가까운 세월, 중국의 피지배국으로 있던 시절부터 베트남 왕국으로 존재했던 몇 백 년, 다시 프랑스 지배하에 있었던 100년 가까운 세월과 그 세월을 종식시킨 베트남 인들의 투쟁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놀라운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났는데도 그들은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가 전승국이었으므로. 지구상의 많은 약소국들이 독립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도 독립하려고 노력했다.

10년간의 전투 끝에 1954년의 그 유명한 디엔비엔푸 전투를 끝으로 마침내 독립하게 되었다고 했다. 상대국은 프랑스였지만 미국은 프랑스를 원조했다. 그 때에는 북과 남이 따로 독립했고 남쪽은 미국의 영향 아래 있었다. 미국이 북쪽마저 자기 수중에 두려고 우리가 잘 아는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지만 그들은 미국과 한국 연합군에 패배를 안겨주고 독립과 통일을 쟁취했다고 했다.

‘오 마이 갓!’
100년 식민 지배를 받던 국민이 찌들었던 노예근성을 벗어던지고 싸워서 식민 종주국을 패퇴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만주에 우리 독립군이 있었다고 하나 그들이 한반도에 진주하기 전에 해방을 선물 받았던 우리와 얼마나 대비되는 일인가?

갑자기 나는 베트남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내가 받은 영감은 너무나 강렬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베트남어를 배워서 우리 영천의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베트남 사람들과도 소통하고, 전쟁의 희생자였던 어느 작은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에게 베트남 말로 사과하고, 나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수 있도록 말이다.

그곳에 머무는 일주일 내내, 난 ‘하나’와 함께 하노이의 상점 간판을 읽었다. 마치 다섯 살 어린 소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흥분하던 어린 소녀.

그러고 보니 지금 이 나이에도 세상의 모든 일은 모르는 것투성이다. 마치도 내가 시골의 일에, 정원의 일에, 두더지에 관해 모르는 것투성이인 것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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