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올해 하반기에 한국의 식량 인플레이션이 무척 가파를 것으로 전먕됐다. 일본 투자은행인 노무라홀딩스는 최근 아시아의 식량 인플레는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만 하반기에는 한국을 비롯한 싱가포르, 필리핀 등지의 식량 가격 상승 폭이 가파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한국의 식량 가격 상승률은 지난 5월 5.9%에서 하반기에는 8.4%로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쌀 소비 감소로 주식인 쌀이 남아돌면서 먹고사는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제2의 주식으로 떠오른 밀의 자급률은 0.8%로 거의 전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세계 밀 비축량은 이상기후로 인한 흉작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연간 소비량의 20% 수준에 불과, 예년의 33% 수준을 한참 밑돌고 있다. 이로 인해 오는 8월부터 대기근이 우려된다고 하니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쌀가루의 산업화를 추진, 쌀가루를 밀가루 대체품으로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제2의 녹색혁명’을 시작, 식량안보를 지키면서 쌀 수급 과잉 문제도 동시에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쉽게 가루로 만들 수 있는 쌀가루용 벼의 재배를 늘려 2027년까지 연간 밀가루 수요의 10%에 해당하는 20만t을 분질미(粉質米)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럴 경우 밀 자급률이 현재의 0.8%에서 7.9%로 높아지고 쌀 수급 과잉 해소를 위한 약 6000억 원의 예산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올해는 분질미 재배면적을 작년의 4배 수준인 100㏊로 늘릴 계획이다.
 
일반 쌀은 전분 구조가 밀착돼 있고 단단해 가루로 만들려면 물에 불린 후 건조·제분하는 '습식제분'을 해야 한다. 그러나 분질미는 밀처럼 전분 구조가 둥글고 성글게 배열돼 있어 ‘건식 제분’이 가능하다. 습식제분보다 비용이 낮고 전분 손상도 적어 밀가루를 대체하기에 유리하다.

또한 재배가 수월하고 대량생산도 가능하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병충해에 강하고 다른 작물과 돌려짓기도 가능하다. 분질미의 모내기 적기는 6월 하순으로 밥쌀용에 비해 늦어 보리 등 타 작물과의 이모작에 적합하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벼와 밀의 가격 격차 해소와 함께 쌀가루의 안정적인 공급 물량 확보, 가공적성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쌀 공급과잉 문제가 대두된 이후 소비 대안으로 쌀가루 방안이 논의돼 왔지만, 여전히 밀가루 소비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들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밀가루와 쌀가루의 가격 차가 가장 높은 장벽이다.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쌀 가격은 밀 수입가격에 비해 최저 3.3배에서 최고 5.2배나 높았다. 쌀가루 전용 품종으로 다수확을 한다 하더라도 가격 격차를 좁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쌀가루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정부는 쌀 재고가 증가하자 재고미를 가공용으로 값싸게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2020년 흉년으로 밥쌀용 쌀이 부족해지자 가공용 쌀의 공급량을 대폭 줄여 가공업체들을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다. 쌀의 수급 상황에 따라 가공용 쌀의 공급이 오락가락해 지면 가공업체들의 수요 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쌀가루의 가공적성도 관건이다. 개선이 많이 되고 있기는 하나 분질미가 아직은 밀가루 수준의 가공적성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바로 글루텐 성분 때문이다. 글루텐은 밀가루를 찰지게 만드는 단백질 성분이다. 면 요리나 빵 특유의 식감은 글루텐 덕분이다. 쌀에는 글루텐 성분이 없어 소화가 잘된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쌀만으로 밀가루 빵과 같은 식감을 내는 빵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시중에 나와 있는 쌀빵은 대부분 글루텐 성분을 가미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분질미 재배는 쌀 수급불균형을 완화하면서 해외 의존도가 높은 식량 작물의 자급률을 높이는 방안의 하나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지금은 기상 이변이 상시화하고 있어 식량안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도 세계 3대 곡창지대가 기상 이변으로 쑥대밭이 됐다. 게다가 주요 수출국들은 흉작이 들 경우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앞다투어 곳간 문을 걸어 잠근다. 그럴 경우, 국제 곡물 가격이 올라가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곡물 수입국들에게 돌아간다.
 
세계적으로 밀이 쌀보다 더 많이 소비되는 이유는 통밀 그 자체로 먹는 것이 아니라, 빵, 쿠키, 국수, 파스타 등 다양한 가공제품 형태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공에 적합한 다수확 벼 품종 개발과 가공제품을 만드는 기술혁신에 매진하는 한편 쌀가루와 밀가루 간의 가격 격차를 해소화는 방안이 적극 모색돼야 하겠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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