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여름이 왔다. 날씨가 무더워지자 모두들 비를 기다린다. 언론에서는 장마가 곧 닥칠 것이라고 했지만 영천에는 아직 큰 비는 오지 않았고 대신 며칠에 한 번씩 비가 내린다. 영천은 전국에서도 손꼽을맡큼 비가 귀한 곳이다. 그래서 과일이 잘 되는 곳이기도 하다.

비가 와 주어 숨통이 트인다. 텃밭에도, 동림원에도 식물들이 생생해진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동림원 여기저기에 살구의 황금 색이 선명하다. 초록색 잎이 무성한 살구나무에 잘 익은 살구가 주렁주렁 열렸다.

첫번째, 앵두, 두번째, 체리 그 다음으로 살구가 익었다. 앵두는 나무 두 그루, 다닥다닥 빨갛게 열린 것이 신기했고 잘 따 먹었다. 체리는 열그루 정도에 열매는 손으로 꼽을 정도의  빈약한 수확이었다. 서운했다. 그런데 이제 살구다.

그 동안 꿈꾸었던 과일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을 갖춘 채 열매를 매달고 있다. 이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이 과일나무 정원을 시작하면서 원했던 모습인 것이다.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세상에 유익을 주기 위한 준비를 갖춘 모습이다.

일반 과수원에서의, 온몸이 쇠줄로 고정된 채 돈으로 환산되는 과일을 매달은 과일나무가 아니라 원래의 제 모습 그대로 태양 아래 활짝 온 몸을 펴고 사랑스런 자식들을 품고 있는 늠름한 모습의 과일나무이다. 그 그늘 밑에서 노래도 부르고 아기를 어루기도 하는 그런 과일나무 말이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전부 헤어보니 열네그루다. 한 개를 따서 먹어 보았다. 달콤하다. 훅 끼쳐오는 향기를 가슴 깊이 마시며 혀끝의 맛을 음미한다. 이게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과일의 본 모습이구나. 가슴 깊이 감사의 념이 끓어오른다. 정말 수고가 많았어요. 이웃의 조생 복숭아도 몇 개 뿐이지만 붉게 익었다. 이제 정말 과수원이 되어가는구나. 

마침 옆집에서 소주 한 잔하러 오시라고 해서  남편이 간다고 말한다. 마음이 기뻤다. 그래서 안주 감이 어디 있나? 생각하다가 냉동실에서 아끼던 쇠고기를 조금 꺼내 비닐 봉투에 담았다.

나오다가 보니 휴대폰을 안 가지고 왔다. 잠깐 들어가 가지고 나온다는게 시간을 지체했다. 안 보여서 남편의 전화기로 내 번호를 눌러 찾았기 때문이다. 나오면서 비닐봉투를 찾는데 안 보인다. 내가 다른 데 두었나? 고양이 놈들 짓임에 틀림 없다고 생각한 것은 한참 찾은 후였다.

아이고! 택시 기사 아저씨가 말하길 아가씨들은 택시에 타서 부터 내릴 때까지 휴대폰을 '사용'하고 아줌마들은 타서 부터 내릴 때까지 휴대폰을 '찾는'다더니 내가 바로 그랬네. 휴대폰 찾느라고 쇠고기를 잃었네.

술자리에 가서 고양이 탓을 했더니 모두가 도둑 고양이라고 성토 일색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 놈들 잘못만은 아니다. 내가  가끔씩 비닐 봉투에 싼 채로 먹을 것을 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에도 그 놈들은 금방 낚아채 가거나 하지 않는다. 조심성있게 살펴본 후 한 참 후에나 가져간다.  그러니 휴대폰을 금방 못 찾은 내 탓인 것이다. 하긴 잃어버린 마당에 누구 탓을 하면 뭣하나? 그놈들은 횡재를 한 것이고 임신해서 배불러 다니던 얼룩이 놈과 작은 새끼들과 동네방네 잔치를 벌였을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술자리 안주로는 다행히 볶음 돼지고기가 인기여서 내가 쇠고기를 못 가져왔다고 해서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동네 분들은 서로 학교 선후배도 있고 친구의 친구도 있다. 가끔씩 귀촌하려는 분이 텃세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는 말을 듣는데 그렇게 애를 써서 인맥을 만든 유튜버 분들 근처에 새로 오는 분들이 모여 사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볼 때가 있었다. '함께'라는 것이 위로가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툇마루에 참새 한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고개가 모로 꺾인 채 누워 있다.  소나무 밑  땅을 파고 묻어주었다. 시골에선 생명의 흩어짐과 모임이 눈에 보인다. 시들어가는 나무를 보면 살고자 애쓰는  그 나무의 뿌리가 보이고 새와 고양이와 벌레들이 힘들게 사는 모습도자주 눈에 띄인다.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도 '함께' 할 때 '힘겨움'도 잠시 잊고 웃을 수 있어 좋다. 

서울에 가기 전에 시금치 씨앗을 파종했다. 따로 물은 주지 않았다. 장마철 아닌가? 물난리 같은 것은 없이 장마가 이렇게 쉬엄쉬엄 지나 간다면 좋겠다. 동림원의 많은 어린 나무들이 뿌리를 굳게 박을만큼 물은 계속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뿐이랴? 모든 농부들이 물과 햇빛을 함께 필요로 한다.

황금빛 과일이 가득한 살구나무들에게 축하와 감사를 보낸다. 올해 한 해 무럭무럭 자라서 내년 봄 정식 개장을 할 때 더욱 아름다워진 모습을 보여 주기를!  
투데이코리아는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