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안늙게 관심·활동...‘멋진노후’, 준비와 노력에

▲ 류석호 교수
▲ 류석호 교수
고등학교 동창생 A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다. 해병대 훈련소 조교 출신으로 전직 고등학교 교사인 A는 164cm, 54kg의 마른 체격으로 전설적인 세계적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 1932~1973, 이디오피아, 로마-도쿄올림픽 2연패)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일까.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5년 본격적으로 마라톤에 도전한 그는 지금까지 엄청난 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풀코스마라톤(42.195km) 425회, 울트라마라톤 20회...

여기에 산악마라톤으로 불리는 트레일러닝도 있다.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 42km), 북한산둘레길(우이령을 제외한 65km), 5산종주(불암~수락~사패~도봉~북한산 46km).

특히 울트라 그랜드슬램이 빛난다. 강화~강릉간 308km 국토횡단, 부산 태종대~파주 임진각 537km 국토종단, 해남 땅끝마을~고성(高城) 통일전망대 622km 크로스종단 등 세가지를 마스터했다.

고교 동기생 H는 지금까지 모두 15권의 책을 냈다.

고위 공무원 출신으로 해외근무 15년의 그는 뛰어난 필력과 전문성을 살려 전문서 9권, 여행서 3권, 문학동인지 3권 등을 펴낸 그는 유명 블로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외교관 출신 또다른 친구 R은 판소리 실력이 수준급인데, 요즘 크루즈여행을 위해 왈츠를 배우고 있단다.

기업 임원 출신 S와 중학교 교장 출신 O는 오래전부터 갈고닦은 한시와 서예실력이 각각 경지에 이르렀고, ‘자전거 매니아’ 양 K(사업, 시민감사관)는 두바퀴로 우리나라는 거의 돌아보았고 일본과 유럽 대륙 진출에 나설 꿈에 부풀어있다.

공사(公社) 재직 중 세군데 해외 지사장을 지낸 또다른 S는 지인의 무역 업무를 자문해주는 틈틈이 짬을 내 퇴계학 공부에 열심이다.

이들 외에도 많은 친구들이 외국어와 한문 공부, 악기연주, 레포츠 활동, 봉사활동 등 다종다양한 학습과 취미, 여가를 즐기고 있다.

이들은 모두 1953년 계사(癸巳)생으로 올해 칠순(七旬)을 맞았다.

옛날 같으면 상노인이었을 테지만, 이들에게 ‘인생은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란 표현처럼 한창 물오른(?) 인생의 진미(眞味)를 만끽하고 있는 나날이다.

‘100세 시대’인 이제 70이란 나이는 심하게 말해 노인 근처에도 못간다.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술값 외상 빚은 보통 가는 곳마다 있지만 ‘사람이 칠십을 산다’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다”는 풀이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의 유명한 시 曲江(곡강)에 나오는 싯구다. 그만큼 예전에는 고희(古稀:70세)는 물론 환갑(還甲:60세)을 살기도 그리 쉽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표현을 한다. 세월의 흐름에 대한 용기를 불어넣는 말이기도 하고, 애써 나이에 동의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출이기도 할 것이다.
1970년 남성 58.7세, 여성 65.6세 이던 평균 수명이 반세기가 지난 2020년 각각 80.5세, 86.5세로 20세 이상 늘어났다.

70은 직장에서 또는 사업에서 은퇴하고, 자녀들도 대부분 출가하고 모처럼 부담없이 자신이 오래 꿈꾸던 자기 계발(啓發), 여가 및 취미생활을 즐기기에 딱 좋은 나이에 막 진입했다고나 할까.

자신이 오래 가슴에 품어온 분야에 대한 도전에 나설 적기(適期)인 것이다.

물론 아직도 돈벌이를 위해(?) 로펌이나 금융권, 기업 등 여러 분야에서 현역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친구들도 여럿 있지만...

돌이켜보면 한국전쟁 휴전 무렵에 태어난 1953년생 친구들은 1차 베이비부머 전반기(1955~1960)의 직전세대로 대한민국 성장사와 궤(軌)를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인당 GNP(국민총생산)의 경우, 1953년 67달러에서 2020년 31,750달러(3,747만원), 세계 10위의 GDP(국내총생산; 1.6조 달러), 세계 6위의 수출대국으로 엄청난 성취를 이뤄냈다. 일찍이 세계 역사상 이런 사례는 없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불쌍한 피원조국에서 원조국(연 4조원 이상)으로 당당히 올라섰으니 세계인이 놀랄만도 하다. 어디 경제뿐인가. 한류(韓流)로 상징되는 K-컬쳐의 위상과 매력은 실로 눈부실 정도다.

국민 대부분이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보릿고개’로 상징되듯 너나없이 어렵게 연명(延命) 수준의 고단한 삶을 영위했다. 아이들은 온종일 또래들과 어울려 다니며 방목(放牧)되다시피 스스로 성장했다.

비록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먹거리가 충분하지 않았지만 대식구와 또래들의 울타리와 끈끈함으로 밝게 커나갈 수 있었다.

전쟁과 사회적 혼란의 후유증을 딛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처럼 국민들이 위대한 각성을 통해 일치단결해 조국근대화를 위해 기꺼이 동참했다. 성공과 부(富)를 갈망한 것은 세대 전체의 숙명과도 같았다.

농경사회의 관습이 남아있던 이전과 달리 구시대적인 관념 속에서 자랐지만, 변화하는 시대의 파도를 타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늘 깨어있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다들 나름 열심히 살았다.

지난 1972년, 경북 북부지역 교육문화의 중심지인 소도시 A고교를 졸업한 동기동창생은 6개 반 360명. 이 가운데 3분의 1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으로 올라와 터를 잡았다.

많은 수가 당시 2년제인 교대나 4년제 사범대를 나와 교직에 종사하거나 9급이나 7급 공무원의 길로 들어섰다. 공기업 및 회사원이 그 뒤를 이었고, 자영업을 하거나 직접 기업을 설립한 경우도 있었다. 월세와 전세살이로 시작, 알뜰히 한푼두푼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세간살이를 늘렸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만사 제치고 자녀 교육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시골촌놈의 집념과 끈기로 대부분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거뒀다.

지방 출신의 핸대캡을 딛고 맨손으로 일군 입지적인 성공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른바 결핍(缺乏)을 에너지 삼아 성공이라는 반전(反轉) 드라마를 쓴 셈이다.

특히 자녀교육에 관한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정도의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 세간의 중평이다. 다수의 사시 외시 변시(辨試), 의사·약사시험 합격자와 국내 일류대 및 해외 유명대학 박사, 스타트업 창업자, 대기업 연구원 등 쟁쟁한 인재를 배출했다.

이들 동기생들의 동기애(同期愛)는 정평이 나 있다.

대학 상경파들의 경우,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매월 종로 일대에서 동기회 모임을 가져왔으며, 이것이 지금까지 매월 등산모임 등으로 연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아마 이같은 각별한 동기간 끈끈한 우정이 서로를 밀어주고 위로·격려하는 디딤돌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선의의 경쟁심‘을 부추겨 개인의 발전을 넘어 그 자녀의 성공으로도 연결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우정은 명사(名詞)가 아니라 동사(動詞)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 A고교 재경 동기생들이 오는 20일 서울 성균관대컨벤션 유림회관에서 고교졸업 50주년을 겸한 ’재경 OO고 21회 칠순잔치(고희연·古稀宴)‘ 행사를 갖는다. (나이분포가 최고령 1950년생부터 1954년생까지 다양하지만 절대다수가 1953년생.)

A고교 동기생의 칠순잔치는 일견 지극히 소소하고 개인적인 소사(小史)이지만, 어떤 측면에선 한국현대사의 한 축도(縮圖)이자 서사(敍事)인 동시에 이들 세대가 스스로에게 바치는 상찬(賞讚)이 아닐는지.

다른 한편으로 칠순을 맞아 나이듦과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노익장(老益壯)은 늙었지만 의욕이나 기력은 점점 좋아짐 또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지금 우리 옆에 살아계신 노익장(老益壯) 한 분은 김형석 교수다.

102세인데도 여전히 현역이다. 너무 바빠서 늙을 틈도 없을 것이다.

김 교수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신체는 누구나 다 똑같이 늙게 돼 있다”며 “정신이 늙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이어 “(정신을) 어떻게 키우느냐가 문제인데, 자기가 안 키우면 할 수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정서적으로 늙지 않는 사람에 관해 ‘계속해서 공부하는 사람’ ‘독서하는 사람’ ‘사회적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행복하면 된다며 사회적 관심을 잃어버리면 내 정신력이 약화된다”고 했다.

​사람이 나이 들어서도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일'과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무료하게 지내는 노익장은 없다.

지금도 그들이 현역일 수밖에 없는, 젊어서부터의 '자기일' 이 있는것이다.

70대에도 연간 100회의 연주회를 가졌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1887~1982)은 89세까지 연주했었다.

여기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수년 전, 영국 캠브리지대 연구팀이 ’단명(短命)하는 사람과 장수(長壽)하는 사람의 차이‘를 오랜 기간 조사해보니 다른 어떤 것보다 놀랍게도 우정(友情), 즉 친구관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마음고생이 심하며, 병에 걸리고 노화(老化)가 빨라져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늙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절대 예외는 없다.

그때 어떤 노인이 되는가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의 준비에 달려있다.

부귀명예도 중요하지만 자기의 노년도 그 이상 중요하다.

지금처럼 평균수명이 길어진 시대에는 더 그렇다.

아무리 바쁘게 지내더라도 노후의 '자기일' 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결국 '노익장'도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앞모습은 속일 수 있어도 뒷모습은 속이지 못한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굳세고 건강한 사람들을 가리켜 ‘정정(亭亭)하다’고 한다. 한자로 정자(亭子)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정함이란 단지 몸이 튼튼하고 기운이 팔팔한 것이 아니다. 정자처럼 사방으로 시야가 열려 있고, 안이 넉넉하게 비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은은한 정기(精氣)로 기품(氣品)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 노인문제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 ‘나이듦에 관하여(Elderhood)’라는 책이 나왔다. 노인의학 전문의이자 미국 캘리포니아대 의과대 교수인 루이즈 애런슨(Louise Aronson)이 저술한 이 책은 새로운 시각으로 노인 문제에 접근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애런슨 박사는 “노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긴 구간이면서 개인차가 가장 큰 기간”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세상은 청년기와 중년기 위주로 설계되어 있어서 역사적으로 봐도 노년층은 철학이나 의학의 논의 대상에서 열외였다.”고 지적한다. 또한 “노년기가 끔찍한 것은 나이만 먹다가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늙어가는 과정이 쓸데없이 길고 고통스러우며 치욕스럽고 고독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노인의학 전문의 로버트 버틀러의 말을 인용하면서 노인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특히 “사회는 노인을 하찮음, 쓸모없음, 짐 덩어리, 못난이, 열등한 존재로 보고 있으며, 심지어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공공(公共)의 적(敵)’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노인들에 대한 현대의 왜곡된 사회적 시각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애런슨 박사는 사회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노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는 해결책으로 “부정적인 선입견만 가득한 노년기에 대한 기존의 틀을 깨고 더욱 의미 있고 사랑받으며 풍요로운 노년기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면서, “노년기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는 전부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누구에게나 다가오게 되어 있는 노년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보내느냐에 따라 나의 노년기가 비참할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년기를 가족이나 사회에 맡기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노년기를 새로운 기회의 시기로 삼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 나이듦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고 대비하며 준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노년기를 대비하여 우리 모두가 자기자신을 위해서라도 ‘나이듦’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각자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노년은 쾌락(탐욕)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덕(惡德)의 근원(根源)인 그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대철학자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 43)의 말이다.

인생의 황금기는 70부터. Brav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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