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전동킥보드 규제 완화에 안전 논란 증폭

▲ 유한일 기자.
▲ 유한일 기자.
신산업 분야 종사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주제가 ‘규제’다. 머릿속에 사업 아이템이 마구 떠오르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면 거대한 벽에 막히는 기분이라고 한숨을 쉰다. 어떨 땐 “이건 한국에서 어렵지 않겠냐”는 맥 빠지는 소리도 듣는다고 한다.
 
한국은 ‘규제 공화국’이라고 불린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신산업 육성을 외치고 있지만 각종 규제로 좌초된 사업이 한두 개가 아니다. 시장에 발을 들인 뒤 사업 영역을 넓히려면 이해관계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 국회가 개인형 이동창치(PM)에 대한 규제를 풀어준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 20대 국회 막바지에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다. 이 법은 전동킥보드를 비롯한 PM 이용 문턱을 대폭 낮추는 걸 골자로 한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모빌리티 분야 규제 완화지만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얼핏 보면 국회가 법을 뜯어고쳐 신산업 활성화를 뒷받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국민들의 이동 편의 제고로 비춰질 수 있지만, 반대로 국민들의 안전을 제대로 고려한 결과인지 의심이 든다.
 
오는 10일 시행 예정인 도로교통법 개정안의 내용은 이렇다. 먼저 그간 소형 오토바이에 준하던 전동킥보드의 법적 지위를 자전거 수준까지 내린다. 이로써 차도에만 제한됐던 전동킥보드 운행 범위가 자전거 도로까지 넓어진다. 지금과 같이 보도 주행은 금지한다.
 
또 현재 만 16세 이상인 이용 나이 제한을 만 13세 이상까지 끌어내렸다. 자연스럽게 운전면허 보유 요건도 삭제됐다. 앞으로 중학교 1학년인 내 자녀도 전동킥보드에 올라탈 수 있다는 얘기다. 최소한의 안전 장비인 헬멧의 의무착용 규정은 유지했지만 범칙금 부과 조항을 삭제했다.
 
공유 서비스를 중심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전동킥보드는 미래형 이동수단으로 주목받는 동시에 ‘거리 위 무법자’로 불리고 있다. 차도와 보도를 가리지 않고 질주하는 전동킥보드로 시민들은 사고 위험에 노출돼 왔다. 오죽하면 최근 ‘킥라니(전동킥보드+고라니)’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관련 통계를 보면 서울시에 등록된 전동킥보드는 지난해 말 7500대에서 올해 8월 기준 3만5850대로 폭증했다. 보도나 골목, 지하철역 입구 등 곳곳에 전동킥보드가 세워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사고율도 치솟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사고는 2017년 117건에서 지난해 447건으로 4배 가까이 늘어났다. 최근에는 사망 사고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사고는 늘어나는데 거꾸로 규제를 풀어버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국회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처리됐다.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록을 뒤져보니 이 법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본회의에서도 184명 중 183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국회 관례인 막바지 무더기 법안 처리에 섞여 전동킥보드의 규제가 완화된 셈이다.
 
국회의 섣부른 규제 완화에 지자체와 경찰, 업계는 분주하다. 자전거 도로를 늘리겠다느니, 단속을 강화하겠다느니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안전 논란에 불똥이 튄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들은 개정된 법 시행 후에도 연령 제한을 만 16세 이상으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들 대책으로 전동킥보드를 둘러싼 우려가 잠재워질지는 미지수다.
 
더 가관인 건 21대 국회에서 도로교통법 개정안 시행도 전에 다시 법을 강화하는 재(再)개정안이 발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선 법안에 허점이 있고, 처리 당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인정한 꼴이다.
 
신산업 육성에 국회가 발 벗고 나서는 건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적극적인 논의조차 없이 시민 안전과 직결된 법안을 ‘보여주기식’으로 처리하는 건 곤란하다.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제대로 된 법안 검토만 이뤄졌어도 현재의 논란은 막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도 거리 위에는 킥라니가 질주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가 능사는 아니다. 정작 전동킥보드 안전 논란에 불을 지핀 국회는 마냥 한가롭기만 하다. 양심 없는 일부 운전자들을 탓하기 전에 허술한 제도를 방치한 책임부터 되돌아보길 바란다. 하루빨리 전동킥보드 산업 활성화와 시민 안전 사이 적절한 해법을 찾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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