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시장 도박판 만드는 투자 문화, 법으로 막을 수 있어

▲ 정우성 기자
▲ 정우성 기자
최근 미국 주식 시장에서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전혀 상관 없는 주식 주가가 뜬금없이 폭등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가 트위터에 “시그널을 사용하라”고 쓰자 의료기기 부품사 ‘시그널어드밴스’ 주가가 수십배로 오른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말한 시그널은 비밀 대화가 보장되는 메신저 앱을 가리킨 것이었다. 이처럼 말이 안 되는 이유로 주가가 뛰는 일이 주식 시장에는 꽤 있다. 주식 시장도 로봇의 계산보다는 사람의 판단이 크게 개입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 메시징 앱 '시그널' 로고와 일론 머스크 CEO (사진=시그널·테슬라)
▲ 메시징 앱 '시그널' 로고와 일론 머스크 CEO (사진=시그널·테슬라)
미국 시장에서 일어난 이 일은 해외 토픽같은 뉴스가 됐다. 하지만 한국 주식 시장에서는 이보다도 더 논리가 통하지 않는 비이성적인 투자 행태를 매일 같이 볼 수 있다. ‘정치 테마주’ 이야기다.

코스피는 박스 안에 갇힌 것처럼 제 자리를 맴돌아 ‘박스피’라 불리던 예전의 그 주식 시장이 아니다. 그 어느 시장보다 역동적으로 오른 코스피는 꿈이라 불리던 3000선에 안착했다.
 
반도체, 2차전지, 전기차를 비롯한 4차산업혁명 시대 핵심 기술을 보유한 우량 기업들이 널려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 시장에서 정치 테마주 열풍은 부끄러운 투자 문화 중 하나다.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여의도지점 스마트 딜링룸 전광판. 사진=뉴시스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여의도지점 스마트 딜링룸 전광판. 사진=뉴시스
사람 눈을 속이는 야바위꾼의 도박이 한국거래소 앞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물론 다른 나라 주식 시장에도 정치 테마주는 있다. 하지만 정치인 개인과 관련된 테마주가 아니라 그가 당선돼서 펼칠 정책에 주목하는 테마주라는 점이 다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친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들 주가가 뛰는 것은 투자자라면 충분히 예상하고 대응할 수 있는 투자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 주식 시장 테마주는 어떤가. 대선 주자들이 떠오를 때마다 그와 학연, 지연, 혈연을 억지로 꿰맞추듯 급조한 테마주가 대부분이다.

경영진과 정치인이 대학 동문이라거나, 본사 소재지가 정치인 고향이라는 이유로 테마주라는 식이다.

시가총액이 작고 거래량이 작은 기업이면 더 좋다. 그럴수록 일부 투자자들이 테마주라는 말을 퍼뜨리며 주가를 올리기 쉽기 때문이다.

테마주라 불리는 종목들 중 코스피 대형주는 거의 없고 대부분 코스닥 중소형주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대권 지지도 여론 조사가 나올 때마다 또 새로운 테마주가 나와서 상한가까지 오르는 일이 반복된다.
대통령 선거 후보들과 연관성을 억지로 끼워맞춘 테마주들은 계속 새롭게 생겨난다. 사진=뉴시스
대통령 선거 후보들과 연관성을 억지로 끼워맞춘 테마주들은 계속 새롭게 생겨난다. 사진=뉴시스
테마주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테마주를 만들어서 돈을 버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붉게 물든 차트만 보고 달려든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넘긴 이들은 새로운 테마주를 찾는다.
 
공시 서류를 뒤지면서 공개된 임원들의 학력이나 출신지 정보를 찾으며 새롭게 한탕을 할 테마주를 찾는다. 금융당국이 이를 뚜렷하게 막을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기업은 “해당 정치인과 관련이 없다”고 공시할 뿐 주가 상승이 반갑지 않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테마주라고 보도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기업 관계자들이 있을 정도다.
 
올해는 4월에 재보궐선거가 있고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다. 또 얼마나 많은 테마주가 많은 사람을 현혹할 것인가.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테마주에 뒤늦게 탑승한 이들에게 남는 것은 손실로 가득한 계좌뿐이다.
사진=픽사베이
올해는 4월에 재보궐선거가 있고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다. 사진=픽사베이
테마주를 현실적으로 막는 방법은 단 하나다. 정치 테마를 이유로 주가가 급등한 종목에 최소 1주일에서 몇 달까지 거래정지 기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코스닥 상장사는 채권자가 해당 기업의 파산을 신청하는 소송을 제기하면 거래가 정지된다. 실제 채권자가 아닌 경우라도 법원이 이를 검토하고 결정할 때까지 거래할 수 없다.

그 때문에 답답한 일도 많이 생긴다. 기업을 소송으로 괴롭히기 위해 채권자라고 주장하면서 파산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법원에서 확실히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거래가 정지된다. 투자자들이 부실기업에 투자해 손실을 보는 것을 막는 조치다.
 
테마주도 그와 비슷한 수준의 거래정지를 할 필요가 있다. 테마주로 이익을 본 초기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면 나중에 투자한 이들은 반드시 손해를 본다는 점에서 파산만큼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채권자가 해당 기업의 파산을 신청하는 소송을 제기하면 거래가 정지된다. (사진=픽사베이)
코스닥 상장사는 채권자가 해당 기업의 파산을 신청하는 소송을 제기하면 거래가 정지된다. (사진=픽사베이)
애초에 치고 빠지기식 단기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이들에게 투자금이 묶이고 이익을 실현할 수 없는 것은 테마주를 우리 시장에서 내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력한 대권 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얼마 전 “주식시장이 국민 재산 증식의 무대가 되도록 한국판 뉴딜 성공과 미래산업 육성, 금융혁신, 규제혁파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청소년부터 노인 세대까지 건전한 주식 투자를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규제혁파가 전부가 아니고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는 규제도 있다.
 
올해와 내년 선거 때는 정치 테마주 없는 주식 시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 투표하는 시민. 사진=뉴시스
▲ 투표하는 시민.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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