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한일 기자.
▲ 유한일 기자.
“우리들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대출 규제 좋습니다. 그런데 제발 실수요자를 구분하고 규제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된 청원 내용 중 일부다. 연일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주거 마련을 위해서는 은행 대출에 기대야 하는 처지지만, 대출 규제 영향으로 실수요자들이 사지에 내몰리고 있다는 목소리였다. 이 청원인은 “한푼 두푼 모아 전세 들어가고, 주택 구입하려는 게 우리의 잘못이냐”고 호소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가계부채를 잡겠다고 대출 규제라는 칼을 빼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저금리 기조 속 약 1800조원 규모로 불어난 가계부채가 금리 정상화와 맞물릴 경우 상당한 충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속도 조절 없는 가계부채 증가는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될 만큼 관리 필요성이 절실한 부분이다.
 
금융당국이 본격적인 금리 인상 시기에 발맞춰 대출 규제에 나선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계부채를 관리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행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최근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점도 관리 필요성에 힘을 더하고 있다.
 
금융당국 주문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대출 옥죄기’에 들어갔다. 신규대출을 중단과 우대금리 축소 등 대출 문턱을 높이는 은행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달 초 기준 국내 5대 은행(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년 대비 4.96% 늘어난 약 703조4400억원 수준이다. 금융당국의 목표 관리 증가율인 6%대 턱밑까지 차오른 셈이다. 이 때문에 올 연말까지 대출 한파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제는 이 같은 대출 규제가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지 못하고 애꿎은 서민 피해만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량 규제 함정에 빠진 금융당국의 정책으로 은행들이 대출 창구를 닫아버리면서 실수요자 대출인 전세대출 공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최근 집값이 폭등하면서 실수요자들은 어쩔 수 없이 대출을 껴야하는 상황이 대다수다. 하지만 규제 시행에 따라 대출이 막히면서 실수요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시장 상황, 세대별 다른 부채 성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오락가락 정책도 시장에 혼란을 더했다.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대출 난민이 속출하자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올 4분기(10~12월) 전세대출을 총량 관리 한도에 포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세대출을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에 포함하지 않으면서 은행권의 대출 여력도 8조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이 ‘전세값 상승분 만큼만’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전세대출 재개로 실수요자들의 숨통도 조금이나마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미 규제 기간 전세자금 마련을 위해 위험 대출 시장에 뛰어든 서민들의 피해가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란 우려는 여전하다.
 
금융당국은 이달 중 가계부채 관리와 관련한 추가 대책을 예고했다. 일각에선 현재보다 더 강한 규제가 나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관리와 실수요자 보호라는 상충한 목표 사이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안일한 부분적 규제 완화가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지는 역효과 역시 경계해야 한다. 갈팡질팡하는 당국의 정책은 우리 경제의 또다른 리스크로 떠오를 수 있다. 이번 정책이 가계부채 관리는 물론 부동산 시장 안정화까지 이어지는 선순환을 유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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