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창영 기자
▲ 오창영 기자
“전기차 충전할 데가 너무 없어요”
 
얼마 전 만난 지인의 하소연이다. 그는 올해 가을 테슬라 모델Y를 구입했다. 약 80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서울 기준 약 600만원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받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고, 환경 규제 강화로 친환경차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내연기관차보단 전기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구매를 결정했다고 했다.
 
테슬라 전기차를 탄다는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한동안 즐거운 전기차 라이프를 영위하던 그에게 어느 순간부터 남모를 고충이 생겼다. 전기차를 충전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주차장에 단 1개의 전기차 충전기만이 설치돼 있다고 했다. 전기차 충전 시간이 상당히 긴 탓에 전기차 운전자 간에 충전을 위한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고 했다.
 
그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른 운전자가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며 “그 차량의 충전이 끝나는 밤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에 해당 운전자에게 전화해 이동 주차해 달라고 부탁한 뒤에야 내 차량을 충전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매일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며 살다 보니 주변에서 전기차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좀 더 생각해 보라고 만류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는 비단 지인에게만 국한된 불편은 아닐 것이다. 의외로 많은 전기차 운전자들이 충전과 관련한 어려움을 일상 속에서 겪고 있을테다. 그러나 이같은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의 인기는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6% 늘어난 7만1006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한해 동안 판매한 전기차 수 4만7000여 대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에 2018년 말 약 5만6000대였던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올해 9월 말 20만대를 돌파했다. 2년 9개월 만에 3.6배나 증가한 것이다. 더구나 연말까지 전기차 등록 대수가 약 25만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등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국내 시장에서 전기차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열띤 경쟁에 돌입했다.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서울모빌리티쇼’에서는 월드 프리미어 1종, 아시아 프리미어 5종, 코리아 프리미어 14종 등 총 20종의 신차가 대중에 최초로 공개되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나라가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그 위상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 100대 당 충전시설 수는 2015년 35.2기, 2016년 44.5기, 2017년 59.7기 등 줄곧 오르다 2018년 55.6기, 2019년 51.2기 등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해 8월엔 50.1기까지 줄어든 바 있다.
 
이는 주요 국가들의 전기차 충전시설 수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주요국의 전기차 100대당 충전시설 수는 △미국 185.3기 △영국 318.5기 △독일 230.4기 △일본 153.1기 등으로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았다.
 
최근 환경부가 발표한 ‘2021년 전기차 공공 급속 충전시설 운영현황’에 따르면 이달 1일 기준 전국의 전기차 충전시설은 총 5926기로 집계됐다. 이중 고장난 충전기를 제외하고 사용 가능한 충전시설은 5872기였다. 국가에서 구축한 전기차 급속 충전시설이 6000기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나마 민간 충전 인프라와 완속 충전기 등을 포함하면 충전시설 수는 상당수 늘어난다. 올해 6월까지 전국에 설치된 전기차 급속 충전기는 8000여 기로 나타났다. 완속 충전기는 5만9000여 기였다. 전기차 충전시설이 총 7만여 기에 육박하는 셈이다.
 
수치상으로는 전기차 충전시설이 넉넉해 보이나 지역별 수요에 맞게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이들 충전시설은 대부분 공공 시설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거용 전기차 충전시설 보급률은 2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상에서 전기차를 충전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전문가 역시 이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시장조사업체 컨슈머인사이트의 최현기 수석은 “전기차 구입 전 우려 요소, 그리고 전기차 주행 중 불편한 점에 공통적으로 부족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와 긴 충전 시간이 꼽힌다”며 “이는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로 언급된다”고 말했다.
 
문제를 인식했는지 정부는 부랴부랴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며 방안 마련에 나섰다. 2025년까지 고속도로 휴게소 등을 중심으로 급속 충전기 1만2000기 이상, 도보 5분 거리 생활권 중심으로 완속 충전기 50만기 이상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충전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구축해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겠다는 정부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발표한 계획을 현실화할 때까지 정부는 부단히 실천에 옮겨야 한다. 2025년께 전기차 100만대 시대를 열겠다는 정부의 목표가 헛되지 않기 위해선 전기차에 연료를 공급할 충전 인프라 구축이 최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은 국내 전기차 운전자의 불편을 크게 해소해 줄 뿐만 아니라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이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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