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오창영 기자 |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 대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신규 등록된 전기차는 벌써 4만대에 육박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만4234대과 비교해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전기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차량 구동에 필요한 전기를 충전할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어서다.
 
▲ 서울 용산역 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
▲ 서울 용산역 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

◇‘충전 난민’ 볼멘소리 속출…구축된 인프라도 대부분 완속 충전기 “완전 충전에 대략 10시간”
 
“전기차 충전할 데가 너무 없어요”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는 지난해 가을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Y’를 구입했다. 약 80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서울시 기준 약 600만원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받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고, 환경 규제 강화로 친환경차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내연기관차보단 전기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구매를 결정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전기차를 사고 얼마 안 돼 불편한 상황에 직면했다. 전기차를 충전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현재 살고 있는 곳의 주차장에 단 1개의 전기차 충전기만이 설치돼 있다”며 “전기차 충전 시간이 상당히 긴 탓에 전기차 운전자 간에 충전을 위한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고 했다.

그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른 운전자가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며 “그 차량의 충전이 끝난 뒤인 한밤중 혹은 새벽에 해당 운전자에게 전화해 이동 주차해 달라고 부탁한 뒤에야 내 차량을 충전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매일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며 살다 보니 주변에서 전기차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좀 더 생각해 보라고 만류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가 지난해 9월 20만대를 넘어서는 등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그러나 넉넉지 못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로 인해 충전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전기차 운전자들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간한 ‘2022년 글로벌 전기차 전망-충전 인프라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전기차 충전기 1기당 전기차 대수는 2.6대로 집계됐다.
 
이는 상용 전기차를 제외한 전체 전기차 대수를 충전기 개수로 나눈 것이다. 해당 수치가 낮을수록 전기차 충전이 용이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전기차 판매가 급증한 우리나라의 충전 인프라는 공급 용량 22kW 이하의 완속 충전기 위주로 구축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전기차 충전기 개수는 약 10만5000기였다. 이 중 완속 충전기는 약 9만대(86%)로 2020년 약 5만4000대 대비 67%나 증가했다. 반면 급속 충전기는 2020년 약 1만대에서 지난해 약 1만5000대로 5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실상 지난해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급속 충전기보다는 완속 충전기 중심으로 이뤄진 셈이다.
 
완속 충전기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 충전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환경부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에는 완속 충전기 이용 시 완전 방전에서 완전 충전까지 공급 용량 6~7kW 기준 4~5시간이 소요된다고 안내돼 있다. 그러나 충전기 타입별, 전기차 차종별로 충전 시간이 상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의 안내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기차 운전자는 완속 충전기로 전기차를 완전 충전하기까지 “대략 10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기가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다는 점도 문제시되고 있다. 전기차 보급률이 높은 서울의 경우 전기차 대수가 가장 많은 강남구에는 1만1400여기의 충전기가 등록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전기차 대수가 가장 적은 강북구의 충전기 개수는 496기에 불과했다.
 
또 전기차 충전 인프라 대다수가 공공 시설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주거용 전기차 충전시설 보급률은 2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상에서 손쉽게 전기차를 충전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해외와 달리 홈 충전 시스템 구축이 어려운 국내의 경우 공용 인프라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다수의 전기차 운전자가 충전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 서울 소재 한 전기차 급속 충전기.
▲ 서울 소재 한 전기차 급속 충전기.

◇정부 나서 급속 충전기 중심 인프라 구축해야…‘사용자 편의성 위주’ 우선 설치 목소리도
 
이에 정부가 주도해 급속 충전기 중심으로 충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25년께 전기차 100만대 시대를 열겠다는 정부의 목표가 헛되지 않기 위해선 전기차 충전 부담 해소가 선행돼야 한다.
 
환경부가 발표한 ‘2022년 전기차 공공급속충전시설 운영현황’에 따르면 이달 8일 기준 전국의 전기차 급속 충전시설은 총 6237기로 집계됐다. 이 중 고장난 충전기를 제외하고 사용 가능한 충전시설은 6204기였다. 정부가 구축한 전기차 급속 충전시설의 수가 6000기를 겨우 넘긴 셈이다.
 
이같은 문제를 인식한 정부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며 방안 마련에 나서는 모양새다. 환경부는 2025년까지 1만5000기 이상의 급속 충전기를 직접 설치하겠다고 목표했다. 급속 충전기는 비상시 또는 장거리 여행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고속도로, 국도변 중심으로 확충할 것으로 보인다.
 
또 완속 충전기도 도보 5분 거리 생활권 중심으로 50만기 이상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 민간 기업 등이 구축하는 충전시설까지 포함하면 충전 인프라 구축 현황은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업계는 정부의 충전 인프라 구축 소식에 환영의 뜻을 내비치면서도 충전소 설치 장소를 정부 임의로 결정하는 대신 전기차 운전자들이 요구하는 지역부터 우선 설치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 역시 사용자 편의성 위주의 ‘한국형 선진 충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은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산업 발전과 사업화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올 3월 열린 ‘2022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산업 전략 컨퍼런스’에서 “전기차 판매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충전 인프라의 기술 트렌드와 정책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가 추진해야 할 전기차 충전 인프라 정책 방향으로 △사용자 중심의 부지 선정 △2024년까지 보조금 지원 △버스‧택시 전기차 지원 및 충전 인프라 지원 △지방자치단체(지자체)와 민간 산업 지원 및 투자 활성화 등을 꼽았다.
 
김 협회장은 “향후 5~10년은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며 “집단 거주 특징을 보이고 있는 한국은 충전 인프라 모델을 선제적으로 구축해 글로벌 충전 인프라 산업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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