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현준 산업금융부장
▲ 안현준 산업금융부장
최근 일부 공공기관과 기업 등에서 자사와 관련해 비판적인 보도를 한 기자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여기에 이전에도 흔치 않았던, 기자 개인에 대한 월급 가압류 신청 사례도 흔한 일상이 돼버렸다.

기자들이 ‘팩트’를 기반으로 보도를 해도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는 손해배상청구나, 월급 가압류 카드까지 꺼내드니, 일선 기자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보도 환경이 위축되는 분위기까지 형성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등 현업단체들도 이 부분에 대해 ‘기자 길들이기'라고 비판하고 나섰지만, 현실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부족했다. 
 
이와 함께 최근 법원에서 급여 가압류 신청이나 손해배상 청구 등을 기각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면서 언론계 내부에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일례로 서울남부지법은 6월 14일 호반건설이 모 방송사 기자에게 상대로 제기한 급여채권 가압류 신청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앞서 해당 기자는 “공정위, 호반건설 2세 ‘일감 몰아주기 의혹’ 곧 제재” 제목의 기사에서 “재계 순위 37위인 호반건설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을 조사해온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제재 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보도 직후 호반건설은 즉각 사실과 다르다며 언론중재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각각 정정 보도를 신청하는 조정신청과 방송 심의 민원을 냈다.

또 해당 방송사와 기자를 상대로 정정 보도와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취재 기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금액에 대한 월급 가압류까지 걸었다.

이를 두고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현업단체들은 “호반건설이 비판 언론에 대한 법적 대응을 본보기 삼아 후속 보도를 막으려는 것”이라며 비판했지만, 소송은 계속 진행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 급여채권 가압류 신청은 미리 보전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시하며 호반건설 측의 가압류를 기각했다.

산업은행도 최근 ‘키코 사태’와 관련해 이동걸 산은 회장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기자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가 1심서 패소했다.

해당 기자는 ‘이동걸의 이상한 논리 “키코, 불완전판매 했으나 불완전판매 아니다”’란 제목의 칼럼을 작성했으나, 산업은행 측은 이 회장이 기사 제목의 “불완전판매 했으나 불완전판매 아니다”라는 문장을 말한 적 없다며 정정을 요구했고 해당 언론사에서 인용 표기를 작은따옴표로 수정하자 해당 기자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산업은행은 소송 당시 “이동걸 회장이 키코 상품 판매가 불완전판매였음을 인정한 것처럼 오해하도록 해 산은 신뢰도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했다”고 주장했으나, 서울남부지법 재판부는 “큰따옴표가 보통의 경우 인용의 의미로 쓰이지만, 강조의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다 이 사건 최초 기사의 내용을 일반인이 보통의 주의를 가지고 읽었을 때 이동걸 회장이 큰따옴표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생각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키코 사태가 불완전판매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언론의 자유가 중요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주장되는 것도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 길들이기' 행태가 유행처럼 번지자, 일부 기업의 홍보팀 사이에서는 더 이상 기자 개인에 대한 월급 가압류와 같은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언론계 내부에서도 일부 매체에서 자행하는 악의적인 보도나, 사회적 현안 보도의 경우 일부 의견만 반영해 본질을 호도하는 행위에 대해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복잡한 상황 속 모두가 다시 생각해봐야 될 것은 기자 본연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기자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메신저이자,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그렇기에 기사 맨 앞에 적는 기자 이름은 보통 한명이지만, 정상적인 매체의 경우 그 기자 이름 뒤에는 데스크 등 많은 기자들의 땀과 노력이 담겨있다.

그들은 팩트체크와 사안에 대해 크로스체크를 수차례하고, 최대한 반론권을 보장해 양측의 입장을 균형 있게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또 기사 속 ‘어미’ 하나와 ‘단어’ 하나도 신중하게 선택해, 자칫 여론이 호도되지 않도록 노력하며 기사를 출고한다.

즉 기사 하나가 출고되기까지 수 많은 기자들의 번뇌 속 여러 차례 수정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사를 비판한다고 무분별하게 기자 개인에게 월급 가압류 소송을 제기하거나 “기자님들은 겪지 않아서 모른다”라는 무책임한 주장을 늘어놓으며 기자의 펜대를 꺾으려는 행위는 더 이상 자행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소송이 아닌 ‘팩트’로 따져야 된다는 의미다. 꼼수나 현란한 말솜씨로 기믹을 교묘하게 섞은 기교가 아니라 순수한 팩트로 반론권을 행사하면 된다.

반론권은 기사 내용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또 정상적인 매체라면 반론권을 수용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소송을 남발하는 것은 권리 자체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

일반적으로 소송의 경우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청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권리 자체를 포기하고 시작하는 소송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단순히 언론에 재갈 물리기용 소송인지 아니면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인지 말이다.

무슨 권리로 매체가 아닌 기자 개인에게 월급 가압류 소송을 거는지도 묻고 싶다.

이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인지 아니면 비판 기사를 쓰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인지.

이제는 그들이 답해야 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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