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오판 폐해 적시, 경계 삼아야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윤석열 정부가 지난 5년간의 탈원전 정책을 ‘바보짓’으로 규정하고 정치 논리에 찌든 원전산업 살리기에 나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취임과 함께 기존 원전 수명연장 금지와 신규 건설 중단을 골자로 추진했던 정책을 전면 폐기하고 새 정부는 탄소배출 저감과 안정적 에너지 공급에 유리한 원전을 확대, 기술개발을 대폭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탈원전이 세계적 흐름을 외면한 편협한 정책일뿐더러 국민 여론도 줄곧 비우호적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정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일으킨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러시아에 대한 불신으로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원전으로 회귀하는 현실에서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한 선택이었다.
 
최근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다소 떨어졌지만 원전살리기에 대한 국민 지지는 확고해 보인다. 무엇보다 기름값과 전기료가 뛰는 판국에 발전 단가가 낮은 원전을 늘려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가 있다. 뚜렷한 근거도 없이 비과학적인 주장을 앞세운 원전 공포의 허구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2011년 쓰나미로 촉발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공포심을 극도로 키웠지만 국내 원전기술과 안전설계에 대한 높은 신뢰도가 이를 상쇄할 만큼 높아졌다. 원전은 4차 산업발전에 필요한 고품질의 안정적인 전기공급을 이뤄 국가경쟁력 확보와 민간기업 기술경쟁에도 유리한 입지를 제공한다. 여름 냉방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 대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걱정이 커지는 시기에 심리상의 기대를 주는 측면도 있다.
 
다만 탈원전을 둘러싼 논란이 새 정부 집권 이후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탈원전 실상과 폐해가 면밀하게 검증되지 못하고 신·구 정권 사이의 갈등으로 인식되는 피상적인 흐름은 아쉬움이 크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탈원전 폐해를 한국전력의 막대한 적자 누적과 전기료 인상에 연계해 공세를 거듭했다.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여당 주장을 억지라고 반박할 뿐 집권 당시 탈원전 정책의 수립과 강행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피하려는 자세다.
 
한전은 문 정부 5년간 34조원의 부채 증가를 떠안아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다. 그 원인이 모두 탈원전에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원가 상승을 전기료 인상에 즉각 반영하기보다 부담을 안정적으로 분산시켜야 하는 공기업 경영의 특성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문 정부가 전기료 인상 없이도 가능하다고 탈원전을 강행하면서 한전이 정책에 호응하기 위해 인상 요인을 분산 반영하기보다 억지로 눌러왔다는 지적은 면키 어렵다.
 
민주당은 탄소중립을 위한 대외 약속을 이행하고 중장기 에너지 정책을 차질 없이 수행하려면 당초 탈원전이 무리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일부 환경운동가들의 원전 폐지 주장에다 이념적 성향에 기울어 과학적 근거와 대안도 없이 성급하게 받아들인 잘못이 크다. 지난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탈원전이 쟁점으로 떠올랐을 때도 민주당은 명확한 방향을 세우지 못하고 정책 추진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민주당은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달아 패배, 반성 모드에 들어가면서도 탈원전에 대해서는 뚜렷한 언급이 없었다. 심지어 문 정부가 말로는 탈원전을 명쾌하게 선언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긴 사례는 거의 없다고 발뺌하는 주장까지 나왔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는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도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고 신한울 3·4호기는 공사계획인가기간을 연장해 공사중단 후에도 재개할 여지를 남겼다고 했다. 신한울 3·4호기 등 건설 중단으로 이미 공사에 들어간 엄청난 비용을 묻어버리고 수많은 전문인력과 국내 기업들이 원전산업을 떠나게 만들어 산업기반을 바닥부터 흔들어 놓은 탈원전이 엄포에 불과했다는 주장에 헛웃음만 나온다.
 
국제사회가 방사성 폐기물이 나오는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한 것은 현재 기술 수준과 비용 등을 고려하면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전이 최선일 수는 없으나 아직은 필요한 에너지라는 현실적 판단이 깔려 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현실을 외면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정책을 결정할 경우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 특히 중장기 에너지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오판에서 시작하면 장기간 국가경쟁력을 저해하고 그 피해가 국민부담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다시는 국정 책임자의 오판이 돌이킬 수 없는 폐해를 불러오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자는 취지에서 탈원전을 돌아보고 반성할 때다. 정치적 오판으로 인한 실정을 분명한 기록으로 남겨 곱씹어야 한다. 그동안 탈원전 반대 국민운동에 앞장선 학계와 연구진, 산업계는 사례연구의 교과서가 될 수 있도록 정책 수립과 추진 과정, 국정과 경제 전반에 미친 영향 등을 심층 분석한 보고서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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