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소탈·신뢰·인내의 외유내강 爲國獻身 리더십

▲ 류석호 교수
▲ 류석호 교수
영국 군주(君主) 중에서는 최장, 세계 역사에서는 두 번째로 오래 통치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96)이 지난 8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 조지 6세 국왕(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2010>’의 주인공)의 2녀 중 장녀인 여왕은 1952년 2월 6일 부왕(父王)이 갑작스럽게 서거하자 25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아 만 70년 127일 자리를 지켰다.

여왕의 서거가 알려지자 애도와 추모 물결이 영국은 물론 영연방(英聯邦), 나아가 세계를 휩쓰는 분위기다. 특히 영국민들은 “최고의 아이콘(icon), 최장(最長), 최고(最高)의 군주를 잃었다”며 정신적 지주(支柱)를 떠나보낸 깊은 슬픔에 잠긴 모습이다.

여왕이 어떤 삶을 살았고,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기에 이같은 존경과 기림을 받는 것일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70년간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맡아온 진정한 리더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고,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헌신한 발자취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생각하면 온화한 미소와 최장기 집권이 떠오르지만, 나에게는 그와 동시에 그녀의 군(軍) 생활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여왕이 되기 전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총알이 날아다닌 전선(戰線)에서 여군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1945년 3월 4일, 19세의 그녀는 영국 여자 국방군에 입대했다. 당시 그녀는 전투부대에 배치되는 대신 구호품전달서비스 부서(WATS, Women’s Auxiliary Territorial Service)에 배치됐다.

원래 WATS는 부대안의 취사와 심부름, 그리고 매점 관리를 맡아보던 곳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확대되자 WATS의 업무도 점점 커져 운전이나 탄약관리까지 맡게 되었다. 그녀의 계급은 소위 였는데,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트럭을 몰거나 탄약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왕실에서 거친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던 그녀가 흙바닥에 앉아 타이어를 바꾸고, 보닛을 열어 엔진을 수리했다.

그러나 왕위계승권자인 그녀는 당시 자발적으로 그 일을 잘 해냈다고 한다.

여성으로서, 영국 왕실의 딸로서 단순히 군 복무가 아닌 실제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이것은 영국 왕실의 오랜 전통이다.

여왕의 장남인 찰스 3세 국왕은 영국 해군 함선장교와 공군 파일럿 등으로 5년간 복무했다.

여왕의 차남 앤드류는 직업 군인으로 1980년부터 2001까지 해군에서 근무했다. 왕립 해군 대학을 졸업한 그는 주로 조종사로 복무했다. 1982년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포클랜드(Falkland)를 점령해 전쟁이 벌어졌을 당시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 인빈시블호의 헬기 조종사로 근무중이었다. 영국 내각(대처 수상)은 앤드류를 후방의 행정요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 반대, 전투에 투입되었다.

여왕의 손자이자 찰스 3세의 장남인 윌리엄 왕세자(왕위 계승 서열 1위)도 영국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고, 헬리콥터 조종사로 약 8년간 복무했다. 윌리엄 왕세자의 동생인 해리 왕자도 육사를 마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두 차례나 파병되어 아파치공격 헬기조종사로 실제 전투에 참전했고, 10년간 군생활을 수행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영국 왕실이 현재까지도 유지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의 실천이 아닌가 한다.

여왕은 생전에 영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헌신(獻身)’일 정도로 그는 왕실과 국민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여왕으로서 그는 약 2만1000개의 약속을 이행했고, 4000개의 법안에 대해 왕실 승인을 했으며, 112개의 외국 국가 원수들의 국빈 방문을 주최했다. 여왕 재임 기간동안 총리가 총 15번 바뀌었다. 그의 첫 총리는 윈스턴 처칠(1952년)이었고 마지막 총리는 지난 5일 임명된 리즈 트러스 총리였다. 그는 통상 매주 버킹엄 궁에서 총리와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져왔다.

그는 2012년 즉위 60주년을 맞아 실시한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국왕’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현실 권력이 없는 국가의 상징적 존재이지만 많은 업적을 쌓고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참전 군인들에게 위로 메시지를 보냈다.

여왕은 “당신들의 용기는 진정하고 지속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면서 “당신들의 행동이 전쟁을 수행하거나 평화를 가져오는 데 있어 최고의 전통 속에 있기를 기원한다”고 격려했다. 당시 여왕의 메시지를 접하고 과거 엘리자베스 1세의 명연설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엘리자베스 1세는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 아르마다와의 일전을 앞두고 “나는 연약한 여자의 몸을 가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영국 왕의 심장과 위장을 갖고 있다”며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훗날 테리사 메이 전 총리 등 여성 정치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구절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대국민 연설에서 왕실 특유의 딱딱한 언어를 줄이는 대신 젊은이나 하층민의 발음을 받아들여 대중 친화적인 여왕으로 변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오랜 세월 영국인의 사랑을 받은 것도 공동체 연대의식과 자발적 동의를 중시하면서 보여준 신뢰 덕택이다.

지난 2020년 4월,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하자 엘리자베스 2세는 특별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국민들의 절제와 단결을 호소했다. 여왕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가 확고하게 단결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후세가 우리를 매우 강인한 사람들로 기억하고 응전(應戰) 방식에 자부심을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역설했다. 정치권에서는 절제된 언어로 국민에게 용기를 안겨줬다며 호평을 쏟아냈다. 난세(亂世)일수록 신뢰 속에서 민심을 어루만지고 하나로 모으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한 장면이었다.

재임 기간 여왕은 영연방 국가를 순회하며,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는 데에 힘썼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00개 이상의 국가를 여행했고 영연방 국가들은 150번 이상 방문했다.

89세의 나이에 이르러 해외여행을 중단하기 전까지 42번의 세계일주를 했을 만큼 여왕은 세계여행가를 뜻하는 ‘글로브트로터(globetrotter)’였다.

여왕의 방문이 역사가 된 순간도 있었다. 1965년, 당시 서독 방문은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전쟁의 종결을 상징하는 외교 행사가 됐다.

또 2011년, 옛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공화국을 방문해 해묵은 갈등 봉합에 힘썼다. 당시 여왕은 “우리가 모두 지난 역사 속에서 과도한 고통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슬프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여왕의 여행 자체가 역사의 ‘첫 기록’이 된 순간들도 있었다. 1996년 여왕은 중국 본토를 방문한 최초의 영국 군주가 됐다. 또 워싱턴 하원에서 연설한 첫 번째 군주였다.

1997년 버킹엄궁 웹사이트를 개설했고 2014년에는 첫 트위터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3년 전에는 인스타그램에도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1976년 3월 26일 국방부 연구시설을 방문해 첫 이메일을 보내는 등 온라인 상에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남긴 셈이다.

여왕은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개회식 때도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와 함께 헬기를 타고 주경기장에 나타나는 설정의 동영상으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여왕은 영화 ‘007′을 패러디해 본드걸로 변신했다. 제임스 본드 역 대니얼 크레이그의 호위를 받으며 낙하산을 펴는 듯한 퍼포먼스로 스타디움에 깜짝 등장했다. 권위적인 왕실 이미지를 깬 파격 퍼포먼스에 대중은 뜨겁게 환호했다.

뛰어난 유머감각으로도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여왕이 1991년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 남긴 말이 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맙시다(Let us not take ourselves too seriously).” 70년을 사랑받은 여왕의 지혜다.

오는 1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질 여왕의 국장(國葬)에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 정상이 이번 기회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삶과 리더십을 떠올리며 자기 나라와 세계의 발전과 평화를 위해 심기일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과 한국, 그리고 필자와의 특별한 인연이 새삼스럽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1999년 4월 19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 내외 초청으로 남편 필립공과 함께 3박 4일간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1883년 한·영 우호통상항해조약을 맺고 수교(修交)한 이래 영국 국가원수가 한국을 찾는 일은 처음이었다. 국민들도 ‘116년 만의 귀빈(貴賓)’을 열렬히 환영했다.

여왕의 방문이 한·영 관계에 물꼬를 트는 등 자양분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여왕은 73세 생일인 4월 21일,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해 지금은 별세한 안동소주 명인 조옥화 여사가 마련한 생일상을 대접받고 축배를 들었다. 생일상은 과일·국수·편육·찜·탕 등 47가지 전통 궁중음식으로 구성됐다. 나뭇가지에 각종 꽃과 열매를 장식한 높이 60cm짜리 떡꽃 화분도 풍미를 더했다.

여왕은 안동에서 봉정사(鳳停寺, 현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극락전)를 방문하는 한편 하회별신굿탈놀이를 관람하고 고추장·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국 문화를 체험했다. 풍산 류씨 문중의 고택 충효당(忠孝堂, 임진왜란 당시 명재상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 방문 때에는 한국의 예법(禮法)을 존중해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좀처럼 맨발을 노출하는 일이 없는 여왕이 신발을 벗는 순간 외신기자들이 플래시 세례를 터뜨리며 소탈한 여왕의 품격이 여과 없이 국제전파를 탔다. 이날을 기념해 여왕은 충효당 마당에 구상나무도 심었다. 봉정사 방문 때는 극락전 앞 돌탑에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고 “돌탑을 쌓았으니 복을 많이 받겠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여왕이 다녀간 이후 하회마을은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으며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봉정사도 이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산사<山寺>, 한국의 산지 승원)에 등재됐다.

그밖에 서울 인사동 거리와 이화여대를 찾아 한국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소탈한 모습도 보였다. 여왕은 버킹엄 궁에 온 신임 주영 한국대사 등 한국 측 인사들에게 당시 기억을 언급하며 추억을 회자(膾炙)했다고 알려져 있다.

안동시는 여왕이 생전에 방문했던 하회마을 충효당 앞 구상나무 인근에 여왕 서거 이후 열흘간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구상나무는 당시 여왕이 방한 기념으로 심은 나무다.

당시 언론사 현역 기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필자는 1998년 9월 어느 날, 대학동기생인 박영숙 주한영국대사관 공보관에게서 점심식사를 함께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박 공보관은 대외비(對外秘)를 전제로 “만약에 영국 여왕이 방한한다면 어디를 가 보는 게 좋겠는지 조언해달라”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필자는 그녀로부터 여왕이 전통문화와 풍속 등 옛것에 대한 애호(愛好)가 유별나다는 보충설명을 듣고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 고향이어서가 아니라,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인 안동이 좋겠다는 뜻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친구가 사는 하회마을과, 외가와 인접한 봉정사에 필자는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어서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던 터였다.

구미가 고향인 그녀도 안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처지라 두 사람은 구체적으로 장소를 물색하는 일에 머리를 맞댔다.

풍천면 하회마을과 서후면 봉정사는 각각 유림과 사찰의 대표적 장소라 해도 손색없을 뿐 아니라 거리상으로도 30km(승용차 40분 거리)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이동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어떻든 한국을 대표하는 여왕의 나들이 코스로 안동의 하회마을과 봉정사가 최종 낙점되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욱이 이보다 2년 앞서 언론사 영국 특파원 생활을 한 덕분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한국 방문 첫날(1999년 4월 19일) 숙소인 서울 남산의 하얏트호텔에서 내외신 언론인 70여명이 참석하는 리셉션(reception, 연회·宴會)에 공식 초대받아 여왕·부군 필립공 부처(夫妻)와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진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국과 내 고향 안동, 그리고 필자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엘리자베스 2세의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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